▲고려산 자락의 절집 마당에 오르니 한낮의 빛을 잔뜩 받은 초파일의 연등에 간절한 염원들이 매달려 있다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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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도의 오래된 숲에는 이미 푸르러진 노거수들이 세상을 막아주는 듯한 고요한 사찰이 있다.
진달래꽃이 온 산을 물들이던 고려산 자락에 있는 청련사와 백련사에 오르면 몸과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 이 무렵의 두 절을 품고 있는 고려산의 울창한 숲은 짙푸르다. 이름도 마치 세트처럼 청련사, 백련사다.
오래된 나무가 든든히 지켜주는 절
강화의 고려산에는 청련사, 백련사, 적련사, 흑련사, 황련사라는 다섯 개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는 천축국의 이승(異僧)이 우물에 피어난 연꽃을 신통력으로 허공에 날려서 그 꽃이 떨어지는 위치마다 각각 절을 세웠다. 이름하여 연꽃 사찰이다.
지금은 백련사, 청련사, 적련사가 남아있는데, 적련사는 붉을 적(赤)자가 자주 불을 나게 한다 하여 쌓을 적(積)으로 바뀐 적석사가 됐다. 사라진 황련사는 현재 보만정지라는 절터로 보존 중이고 흑련사는 고려산 일원에 존재했었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강화의 고비고갯길을 넘어가면 나타나는 청련사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맞아준다. 오래된 나무들이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주는 절이다.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에서 강화도를 향한다면 청련사를 먼저 만나게 된다. 고비고갯길을 넘어 조금만 더 달리면 오래된 나무들이 배경을 이루는 사찰이 보인다. 입구부터 가지가지마다 녹색이 피어오르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보인다. 수령이 300년이 넘었다.
옆으로는 은행나무가 백 년 수령을 훌쩍 넘었다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숲의 나무들이 대부분 이처럼 수백 년의 나이테를 지녔다. 이미 초록으로 울창해진 거목들로 둘러싸인 사찰이 이렇게나 고적해서 단박에 평온해진다. 오래된 숲에 들어앉아 야단스럽지 않고 단아한 고찰에 금방 스며들었다.
청련사는 고구려 장수왕 때 천축조사가 강화의 서쪽 고려산 기슭에 창건한 조계종 사찰이다. 강화 유일의 비구니 사찰이다. 오랜 세월 동안 워낙 낡은 절이어서 그 후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지금의 큰 법당을 세웠다. 절 마당에 서면 단정한 담장 안으로 대웅보전(大雄寶殿)인 '큰 법당'이라는 현판의 글자가 마주 보인다. 그리고 주련이라고 하는 기둥에 세로로 쓰인 글씨 또한 한글이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 하네.'
때마침 지나가시던 스님께서 법당 안의 보물인 불상 이야기를 전한다. 천정에 정렬된 연등과 조선 후기의 탱화와 함께 법당 한가운데 모셔진 고려시대의 불상인 보물 1787 목조여래좌상은 귀한 품격으로 빛난다. 절로 두 손이 모인다.
사찰 위편으로는 담쟁이로 뒤덮인 담장 너머로 보이는 작은 암자 원통암이 보인다. 1984년 청련사와 합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날따라 닫혀있다. 담쟁이의 초록빛이 초여름 볕에 유난히 반짝인다.
산길 쪽으로 몇 걸음 옮기면 양쪽으로 느티나무를 두고 승탑이 모셔진 숲이 나온다. 승탑은 스님들의 무덤을 상징한다.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일종의 부도라고 한다. 당화당과 은화당이라는 당호를 가진 두 기의 승탑이 마치 버섯모양처럼 생겼다. 승탑 부근의 커다란 나무 아래엔 연륜 깊은 부부가 평화롭게 앉아있다. 무슨 이야기인지 두런두런 나누는 모습이 숲의 풍경처럼 아름답다.
절 마당으로 다시 내려가니 저쪽 산속에서 산행 중인 일행들이 숲길을 걸어온다. 고려산 자락을 따라 이곳을 출발점으로 하는 청련사 산행코스이기도 해서 이따금 한두 명씩 묵묵히 숲길을 걷는 이들을 볼 수 있다. 몽골몽골 솟아나는 땀을 식히고자 물 한 바가지 들이키고 종무소 앞의 700살이 넘은 느티나무를 올려다보는 이들의 건강한 하루를 본다. 장대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이곳을 오고 가는 이들에게 청정 도량의 맑은 기운과 쉼을 전하는 청련사의 숲이 유독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