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터널로 산책 나왔어요
박서진
장미의 계절입니다. 파란하늘 아래 붉은 장미가 유난히 아름다운 날이예요. 단양은 초고령 사회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이 소식 귀한 곳이니 어린이집 친구들은 어딜 가도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산책 중 길에서 마주치게 되면 아이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쌍둥이들이야?"라는 첫인사로 어르신들과의 짧은 만남이 시작됩니다.
"모두 똑같아 보이죠? 쌍둥이 아니고 친구예요."
"어린이집에서 나왔지?"
"네~ 맞아요."
"거봐, 어린이집이지."
"쌍둥이인가 했네. 아이고 이뻐라."
몇 번의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제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아이들의 산책은 어르신들에게 비타민이 되어줍니다.
매주 수요일은 우주반 친구들이 훈장할아버지를 만나는 날이에요. 어린이집과 가까운 곳에 할아버지 서당이 있습니다. 강이 흐르는 강변길을 따라 걸어가며 꼬맹이들은 마냥 즐겁습니다. 할아버지 서당이 다가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층 서당을 향해 "훈장할아버지" 하고 소리칩니다. 두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훈장할아버지" 외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예요.
서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은은한 먹향기가 맞아줍니다. 그리고 훈장할아버지의 필체로 가득 채워진 시큼한 화선지 냄새가 밀물처럼 서서히 전해집니다. 장재혁 훈장할아버지는 단양에서 37년째 서예 학원을 운영하십니다. 아이들을 위해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시며 재능기부를 해주셨어요.
우스갯소리인데요. 학창시절 한문 시험을 볼때면 주관식 문제 답으로 무조건 지(之)를 써서 제출했습니다. 之(갈 지)는 어조사로 어디든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럼 어김없이 정답이었습니다. 지금은 교과목에 한문이 없다고 하네요.
좋아하지 않았던 과목이었는데, 꼬맹이들과 함께하는 훈장님의 수업은 가르침이 아닌 깨달음을 주십니다. 첫 수업 때 훈장님은 천지지간 유인최귀(天地之間 惟人崔貴)를 강조하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한 존재라며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매주 수요일마다 훈장할아버지를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