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또 다른 날』가운데, 김금숙
딸기책방
한창 병원에 다니던 시기에 엄마라는 이름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고, 내게 찾아온 생명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았다. 나는 끝이 없는 어둡고 긴 터널 속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희망처럼 붙잡고 있었던 것은 터널의 끝은 빛이 있을 거라는 거였다. 괴롭고 두려운 시간이었지만 그럴수록 만나게 될 빛은 눈부실 거라고 여기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
끝이 없을 것 같던 터널을 기어코 빠져나왔다. 그리고 역시나 터널의 끝엔 햇살이 가득했다. 다만, 애초에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엄마'라는 이름이 아닌 온전한 '나'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다를 뿐.
왜 이렇게 아이에게 목을 맬까?
산이 때문일까? 나의 엄마와 그의 부모 때문일까?
더 나이 먹으면 아이를 갖고 싶어도 못 갖는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나도 나를 모르겠다.
-김금숙, <내일은 또 다른 날> 가운데
비행기는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70% 이상을 제 항로에서 이탈한다고 한다. 비행 중 기류 등의 영향으로 항로를 벗어나면 재빨리 다시 제자리를 찾고, 다시 벗어나면 또 돌아오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한다.
처음 출발했을 때의 항로는 벗어났을지 몰라도, 지금 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의 항로를 가는 중이다. 목적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경유지였다고 생각하고, 지금 가는 이 항로에 나를 맡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그 어둡고 막막했던 터널 속이 아니라는 거다. 어느 날은 비가 내리고 또 어느 날은 눈보라가 칠지라도 그저 잠시 지나가는 날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아이 있는 삶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이 없는 삶도 괜찮다.
- 김금숙, <내일은 또 다른 날>가운데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처음 기획부터 세상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말한다. 그 마음을 너무나 이해한다. 나 역시 터널을 벗어나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고작 4년이 지났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쿵' 하고 돌덩이가 떨어지던 시기는 지났다. 그동안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뒤돌아 눈물을 훔쳐 왔다면, 이제는 차오르는 눈물을 쓴웃음으로라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점에 김금숙 작가의 <내일은 또 다른 날>을 만나게 되어 참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