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벽화인간탑 쌓기가 형상화 되어 있다.
유종선
그날 반일 투어로 만난 여행객들은 고딕 지구에서 이야기가 서린 여러 장소들을 안내에 따라 둘러보았다. 보케리아 시장부터 시작해서 콜롬버스가 돌아와 이사벨 여왕을 만났다던 왕의 광장, 스페인 내전의 총알 자국이 남아있는 산 필립 네리 광장, 거인 인형이 전시되어 있던 대성당.... 신선한 오전 산책이었다. 하지만 난 설명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우주가 슬슬 피곤해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걷고 무슨 설명을 또 듣는 걸까 이해가 안 되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부모가 데려가 주는 여행은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어른들의 코스를 아이의 입장에서 참아주는 느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얌전하다가도 감탄하다가도 조금만 지루해지면 괴로워 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일단은 계속 걸어다니는 것이 기본이라는 걸 인식시켜야 했다.
"여행은 원래 많이 걷는 거야. 많이 걸으면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이런 저런 생각하는 게 여행의 재미야."
이야기가 서려있는 아름다운 타국의 길을 걷다가 배고프면 식당에 들어가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어찌보면 여행은 참 별 것 아니다. 나는 여기에 아들과 지루하지 않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는 목표를 더 가지고 왔다. 생활 공간에 같이 있으면 아이와의 시간은 부모에게도 '일'이 된다.
내가 생산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을 빼서 아이에게 주는 것 같고, 아이 또한 더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게 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의 목표에 따라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실제로는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은 데도.
여행 와서야 비로소 목표를 잊고 그냥 그 시간에 같이 잘 있는 사치에 집중해보게 된다. 별 것 아니라는 걸 잊고 그 별 것 아닌 데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피카소의 거침없음, 그림세계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