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다단계 주가조작단 연속 보도’를 한 오승렬 PD, 서효정 기자, 임지수 기자(왼쪽부터)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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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느닷없는 하한가'를 예측하진 못했을 텐데, 당일 보도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임지수 : "열심히 취재하던 중 주가폭락을 맞닥뜨렸다. 갑작스러웠지만 취재해 오던 사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우리가 가장 개연성 있는 설명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주가가 떨어진 종목들이 주가조작단이 손댄 종목과 일치했다. 적어도 해당 주가가 위태롭게 쌓아 올려진 배경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들어가는 게 맞느냐는 고민은 있었는데 데스크에서 '부풀리지 말고 제대로 취재된 데까지 보도하자, 지금 설명하는 게 가장 국민의 알권리에 부합한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 일어나니 취재 중인 종목의 주가가 실제로 떨어지고 있어서 놀랐을 것 같다.
오승렬 : "'이상 하한가' 자체가 취재에 대한 증명이기도 했다. 아무리 구체적인 제보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당장 보도하기는 쉽지 않다. 보도로 해당 종목이 더 폭락할 수도 있어 증시의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복잡하게 고민했다. 그날 우리가 알고 있던 종목들이 콕콕 집어서 하한가를 맞는 걸 보면서 '어느 정도 보도의 기반이 갖춰졌다'는 판단이 들었다."
- 염두에 둔 보도 취지가 있었나. 희대의 주가조작 사건을 파헤쳐야 한다거나 금융 및 수사당국의 대처를 요구해야 한다거나.
임지수 : "취재를 시작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금융위원회와 검찰에 이미 제보한 상태였다. 우리가 취재한 것만이라도 먼저 알리고 이후 다른 언론사의 추가취재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겠다고 봤다. 빨리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 증거인멸을 막고, 수사 또한 얼른 진행될 수 있도록 동력을 불어넣기로 했다."
퍼즐조각을 맞춰준 후속 제보
- 어떻게 제보를 받게 되었나.
임지수 : "자세히 밝히긴 어렵지만 오랜 기간 선배 기자들이 설득해 온 사람이 있던 것으로 안다. 문제의식을 가진 분이 있었다."
- 대형 주가조작 사건이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사건이 드러난 이유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왔던데.
서효정 : "근거 없는 추측이 너무 많아 저희도 보도를 하면서 '이런 걸 투명하게 밝히는 게 나을까', '저런 것은 안 밝히는 게 나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오승렬 : "신고했을 때도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 신경을 많이 썼다. 증거인멸할 시간이나 자금을 빼낼 시간을 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도를 먼저 하냐, 신고를 먼저 하냐, 그럼 보도를 언제 어떻게 하냐… 고민을 많이 했다. '보도할 수는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 보도윤리에 대한 고민도 컸겠다.
임지수 : "(모두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보도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근데 그랬다가 이렇게 되면 어쩌지? 저렇게 되면 어쩌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것 같다."
- 첫 보도 후 매일 <JTBC 뉴스룸>에서 관련 보도가 나왔다. 계속 보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JTBC가 아젠다를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나.
임지수 : "그랬다. 우리가 첫 보도를 했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과 확인된 것은 다르지 않나. 매일매일 아는 것을 확인해 나가면서 보도했다. 그날그날 열심히 취재하고 사실을 검증해 나갔다. 감사했던 부분은 우리가 아는 것을 확인해 가는 과정에서 파편적으로 흩어진 정보들이 있었는데 보도를 시작하니 제보가 이어지면서 퍼즐조각이 맞춰졌다는 점이다. 빈 공간이 채워지고 꼬였던 것이 풀리면서 보도를 이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됐다. 탐사보도부 전원이 달려들었다."
서효정 : "팀원 모두 열심히 했다. 저녁 메인뉴스가 끝나면 퇴근하곤 하는데 이번 보도가 한창일 때는 다들 6층으로 모였다(웃음). 보도국이 있는 6층에 전체가 모여 선배들이 '내일은 이걸 알아보자', '이건 네가, 저건 네가' 등을 이야기하는데 실시간으로 취재와 보도에 대한 고민이 오가는 상황에 있는 귀한 경험을 했다."
- JTBC는 '아젠다 키핑'이 강점이지 않는가.
임지수 : "그렇다. 후속보도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모두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건
- 이번 사건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증권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주가조작 사건?
임지수 : "이번 사건의 특징은 모두가 피해자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주가가 폭락하게 된 과정은 이들의 계획에 있던 타이밍이 아니다. 그들이 철저히 컨트롤한 것도 아니다. 숫자로 보면 손실 본 부분도 있고, 이를 알고 투자한 사람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주가조작 기법 자체가 장기간에 이루어진 것으로써 기존에 '가치투자'로 불리던 것을 불법적으로 운영한 신종수법이기 때문에 어디부터 피해자이고, 어디까지 피해자라고 볼 수 없는지에 대한 새로운 판례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오승렬 : "'증권 사기의 패러다임을 바꾼 신종 사기'가 아닐까. 이번 사건은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발견하지 못했다. 원래 감시당국의 프로그램이나 규칙 아래 이상 거래가 보이면 발견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장기간 실제 통장 주인이 있는 위치를 찾아가서 매매하는 등 당국의 눈을 피할 새로운 방법을 이용했다. 범죄수법이 발전한 증권사기의 패러다임을 바꾼 신종 사기였다."
- 최근 JTBC 보도를 보니 사건 총책으로 지목된 라덕연씨(투자자문업체 '호안' 대표)가 자신을 '한국의 워런 버핏'이라며 가치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소개하더라.
임지수 : "결과가 어떠했든 수단이 명백히 불법적이었다. 라씨가 '주가폭락' 부분만 확대하면서 다른 언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본다."
- JTBC 보도 초반엔 라덕연씨에게 돈을 맡긴 핵심 투자자를 밝히는 내용이 많았다. 투자자 명단이 있었나?
임지수 : "이름이 쫙 적힌 명단을 받은 게 아니었다. 말로 전해 들은 게 많았는데, '말'은 기사에 쓸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말로 들은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모았고, 확인된 것만 보도했다. 정보가 있는 곳을 찾아가 부탁도 하고, 읍소도 하면서 보도해 나간 것이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통째로, 깔끔하게 정리된 명단을 받은 게 아니었다."
서효정 : "누군가가 '이 사람도 고액 투자자'라고 말했지만 또 다른 곳을 취재해 보면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발언이 엇갈리면서 핵심 물증이 있어도 그 물증이 모든 걸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투자자로 지목된 사람이 완강하게 부인하면, 다시금 반박할 물증을 확보해야 보도가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