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떠난 지 10년 만에 쓰는 편지임니다. 손이 떨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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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다행이다. 두 번째 시간엔 오랫 만에 글쓰기를 해보기로 했다. 오늘 일기를 써도 좋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하고 싶은 말을 써보기로 했다. 무엇을 쓸지 모르겠으면 오늘 저녁에 어떤 반찬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써보라고 했다.
시간은 35분으로 정했다. 5분이 지나도 연필을 놓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 그땐 쓰는 것 중지하고 숙제로 낸다. 교과서를 옮겨 쓰는 것도 좋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써보는 것도 글자를 익히는 데 좋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보면 글자를 쉽게 터득하던 경험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이 3분 정도 남았는데 오늘 지각한 K 학생이 제일 먼저 연필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다음은 K 학생의 편지다.
나에게 편지 한 장 받는 게 평생소원이었던 당신.
당신 떠난 지 10년 만에 쓰는 편지임니다. 손이 떨리네요.
나에게 편지 한 장 바다보구 죽는 게 평생 소워니라구 한 당신.
이제서 당신 소원을 드러주네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 사라잇쓸 때 이렇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앗슬까요.
당신이 하늘나라 간 지도 벌써 10년이 되엇네요.
당신이 그렇게 바다 보고 시픈 편지 한 장
그 소원을 못드러 주고 보내서 미안해요.
당신 소원 들어주려고 한글공부 하러 댕겨요.
무슨 말부터 써야 할까요.
당신이 가고 업는 지금, 애들은 다 시집 장가보냈어요.
다들 잘 살어요. 당신이 하늘나라에서 잘 보살펴 주구 있는 거지요.
고마워요. 앞으로도 애들 잘 보살펴 줘요.
내가 이름도 못써서 하늘 나라서 걱정 마니 하지요.
걱정허지 마라요. 지금은 학교 댕겨서 글자 아러요.
내일 당신 무덤에 이 편지 가지구 가서 일거 줄게요.
기다려요. 나 말이어요. 이제 글 물러서 고생 안 해요.
그러니 걱정 하지마러요. 보구 시퍼요. 당신 조아 하는 거 많이 가져갈께요.
내일 만나요.
놀랍게도 내용이 길었다. 그랬더니 내일 남편 묘지에 가 읽어주려고 집에서 이틀 전부터 어젯밤까지 쓴 편지라고 했다. 남편이 세상뜨기 전 아내에게 편지 한 장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소원을 못 들어주었다고. 살아 생전 남편 소원을 세상뜬지 10년 되어서야 편지를 써 보았는데 그 편지에 지금 또 덧붙여 썼단다.
그래서 편지 내용이 이렇게 길었다. 이 편지를 남편 무덤 앞에서 읽어주고 태우고 올 거라고 했다. 틀린 것 고쳐 달라고 가져왔는데 잘 되었다고 했다. 맞춤법 좀 틀렸으면 어떤가?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훌륭한 편지다. K 학생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내 눈가도 촉촉해졌다. 이러니 어찌 이 분들에게 하는 수업을 그만 둘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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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이밖에 웰다잉강의, 청소년 웰라이프 강의, 북텔링 수업, 우리동네 이야기 강의를 초,중학교에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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