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유성호
한국 정치는 아름답지 않다. 구세대가 시대의 열차에서 물러나며 새 세대에게 앞자리를 양보하는 미담 따위는 없다. 한국 정치는 치열하지도 않다. 인간의 욕망은 지구 온도 한계치를 가뿐히 초과 달성했고,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이대로면 인구 소멸을 목도할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별 관심이 없다. 이러다 보니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정치보도를 하다 정치혐오병 환자가 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떠돈다. 내 경우에는 울화병이다. '정치가 이렇게 중요한데, 정치가 이렇다고?!'라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2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병을 또 키웠다. 전 정부와 거대 야당을 비판이 아니라 힐난하며 고성을 치는 모습에서 '격'을 찾기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집권세력으로서 비전을 제시하긴커녕 반헌법 반민주로 점철됐던 과거를 옹호하고, 당장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곳곳을 메우고 있는 외국인, 특히 중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이민 확대를 말하는 '모순' 때문만도 아니다. "국민을 갈라치는 분열의 정치는 막을 내렸다. 모든 국민을 섬기는 포용과 통합의 정치를 시작했다"면서 누구보다 '갈라치기'에 몰두하는 '언행불일치' 때문만도 아니다.
"의원 숫자 줄어도 국회는 잘 돌아간다"는 거짓말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3대 정치 쇄신 공동 서약을 야당에게 제안합니다. 첫째,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에 나섭시다. (중략)의원 숫자가 10% 줄어도, 국회는 잘 돌아갑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모자라지 않습니다. 엉뚱한 정쟁 유발, 포퓰리즘에 골몰할 그 시간에, 진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의원 정수 축소가 정치 쇄신'이라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김기현 대표는 정치 쇄신의 또다른 방안으로 '무노동 무임금'과 '불체포특권 포기'를 말했다. 모두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는 것이 곧 쇄신이라는 얘기다. 찬성 여부를 떠나 문제의식은 알겠다. 하지만 의원 정수 축소는 정반대로 '특권 강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를 찬성하지 않는다. 로스쿨 도입 전, 법조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왜? 꼭 이 이유 하나만은 아니지만, '쪽수'가 늘면 '내 몫'이 줄어든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누구든 꺼리는 선택이다.
권력은 모일수록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 인류는 민주주의를 발명했고, '균형과 견제'라는 원리를 금과옥조로 여겨왔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21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국민이 바라는 정치개혁은 특권과 무능의 축소이지 의원 축소가 아니다"라며 "의원 정수를 축소하면 국회의원들의 권력도 더 강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건 국민들이 진짜 원하는 개혁이 아니다"라고 일갈한 것 또한 같은 이유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 본연의 임무를 떠올려봐도 의원 정수 축소는 틀린 답이다. 20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출석한 박원호 서울대학교 교수는 "정치학자 10명을 붙잡고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게 맞아, 줄이는 게 맞아' 그러면 제가 생각하기엔 10명 중 9명 내지는 10명 정도는 '늘리는 게 맞다'고 답변할 것"이라며 의원 숫자를 줄여서 서울의 아파트 단지 몇 개와 농산어촌지역 몇 개의 군이 똑같이 한 명의 대표를 선출하는 게 맞냐고 지적했다.
한국의 국회는 국회답지도 못하다. 입법부는 행정부가 법과 질서를 내세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나라 살림을 엉뚱하게 쓰지 않도록 감시하고,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법을 만들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만 그 원인을 따질 때, 13대 국회(1988~2002년) 이후 국가 예산은 약 36배, 발의법안은 약 26배 늘었지만 의원 수는 고작 1명 늘어났다는 점을 빠뜨릴 순 없다. 역량을 키우려면 더 많은 능력자가 필요한데 의석 수가 적으니 '연줄' 같은 구시대의 문법이 여전히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이런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