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응모작이 담겨 있는 우편봉투신춘문예는 우편으로 작품을 보내 응모해야 한다.
전혜지
전혜지 작가와 신춘문예의 인연은 '자퇴'로부터 시작됐다. 전 작가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공대생이었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전 작가는 공대의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인턴을 하고 있었다.
"인턴에게 딱히 시키는 일이 없어서 시간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하루 종일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서울예대 연극과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그냥 홀린 듯이 지원했어요."
그는 연극과 관련된 활동을 해본 적도, 글을 써본 적도 없었다. 단지, 취미 생활로 연극과 뮤지컬을 즐겨보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홀린 듯이"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엄마한테 합격증과 자퇴서만 보여줬어요. 합격증과 자퇴서를 보여준 날 밤에 엄마가 되게 심각했고, 말을 안 했어요. 그냥 한숨만 쉬면서 '이게 말이 되냐'고 하셨었죠."
한숨으로 가득 찬 밤이었지만, 그 밤은 길게 지속되지 않았다. "고집을 한 번도 부려본 적이 없던 딸"이 '무언가를 확고하게 요구'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반대하지 못하고 자퇴서에 사인했다. 그렇게 전 작가는 서울예대 연극과에서 새로운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전 작가는 첫 극작 수업을 들었다.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들으며 완성한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해 보라'는 교수의 말을 듣고, 전 작가는 "신춘문예에 나도 작품을 낼 수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지원했다. 이것이 신춘문예 응모의 시작이다.
전 작가는 연극과 졸업 후 취직을 했다. '연극을 위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첫 직장이었던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을 퇴사하고, 2년 전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작가는 졸업 후 매년 신춘문예에 작품을 응모하며 '지금 이 일은 연극을 위해서 시작했다'는 것을 되새기고 있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작가는 10년째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당선은 쉽지 않았다. 그는 매년 1월 1일을 낙선 소식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기분 나빴죠. 근데 그냥 재미있는 일 하면서 잊어보려고 노력했어요."
낙선에 대한 그의 좌절은 짧았다. 전 작가는
"인생은 연속"이기 때문에 "기분 상하면 그 상한 기분을 어떻게 풀까 생각하면 되고, 실패하면 그 다음은 어떤 행동을 할지 고민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되는 낙선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당선된 작품을 읽어보았다.
"당선된 작품 중 몇 개는 읽으면서 '나에게는 재미와 메시지를 주지 않은데, 이 작품이 왜 당선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춘문예 심사위원은 신문사마다 매년 달라져요. 그러니까 '어쩌면 한 신문사에서 당선된 작품이 다른 신문사에 갔다면 뽑히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 작가는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심과 자책을 하지 않았다. "운이 안 좋아서 아직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꿈을 위해 꾸준히 글을 썼다.
낙선이 위로가 되어주다
전 작가의 꿈은 자신의 글이 연극으로 공연되는 것이다. 그는 "어딘가에 내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연극을 올리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낙선 글을 모아 <신춘문예 낙선집>을 출간하고자 했다.
하지만 무명작가의 낙선 작품을 책으로 출간해 줄 출판사는 없었다. 그래서 작가는 '텀블벅'을 활용했다. 텀블벅은 창작자의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돈을 후원하여 일정 기간 내에 목표 금액이 모이면 창작가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 서비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