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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추적, 불안정한 삶에도 끝까지 지조 지킨 문일민

[무강 문일민 평전] (24) 말년의 삶과 서거

등록 2023.06.26 18:13수정 2023.06.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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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와 선양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의 그림자로 남은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인물들이 많습니다.

무강(武剛) 문일민(文一民 1894~1968)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평남도청 투탄 의거·이승만 탄핵 주도·프랑스 영사 암살 시도·중앙청 할복 의거 등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문일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일민이라는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해 <무강 문일민 평전>을 연재합니다.[기자말]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

중앙청 할복 의거 이후 문일민은 정계 일선에 나서기보다는 재야에서 활동하며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저항했다.

6.25 전쟁 와중이던 1952년 6월 임시수도 부산에서 '국제구락부 사건'이 터졌다. 국제구락부 사건은 이시영·김성수·장면·조병옥·김창숙 등 재야인사 60여 명이 부산 남포동에 있던 국제구락부에서 이승만 정권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음모를 반대하기 위한 호헌구국선언대회를 진행하던 도중 괴한의 습격으로 저지된 사건이다. 

이승만 정권은 해당 대회를 "무허가집회의 범법행위", "편당적인 인사가 허무맹랑한 불온문서를 획책하여 대외에 발표하고자 한 중대한 범죄", "매국매족 행동" 등으로 규정하고 주요 인사들을 구속해 군법회의에 회부했다.

문일민 역시 해당 사건에 연루되어 이용설·최희송·주요한·김재순 등 흥사단 동지들과 함께 체포됐다. 문일민은 경남경찰국에 구금되어 있다가 40여일 만에 석방됐다.

1956년 5월의 제3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야의 사회단체 대표 18명이 야당 연합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했을 당시에는 애국동지원호회를 대표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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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과 함께 한 문일민(앞줄 첫 번째) ⓒ 문일민 후손 제공

 
독립운동 선양으로 보낸 말년

그러나 말년의 문일민은 현실 정치보다는 독립운동 선양 활동에 주력했던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몸담았던 흥사단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애국동지원호회·광복동지회·독립동지회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의 간부로 활동한 것이다.

1956년 애국동지원호회장 문일민의 이름으로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는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정리해둔 책으로 이후 정부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서훈할 때 주요 참고문헌으로 활용됐다.

또 함께 싸운 동지들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인우 보증에 나서는 등 동지들의 선양을 위해 힘썼다. 1962년 3월에는 김창숙, 김승학, 이강 등과 함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앞으로 백범 김구 선생 시해 사건의 진상 규명과 범인 안두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1964년 독립운동가 이강 서거 당시 고 오산 이강 선생 사회장례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으나 이후 공식 석상에서 문일민의 활동은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후손들의 증언에 의하면 말년의 문일민은 중풍을 심하게 앓는 바람에 자리 보전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1968년 10월 17일 투병 끝에 문일민이 눈을 감았다. 향년 75세였다. 장례는 사회장(社會葬)으로 치러졌다. 10월 2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영락교회에서 국무총리 정일권을 비롯한 200여명의 시민과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경직 목사의 집례로 영결식이 치러졌다. 그런데 이날은 공교롭게도 21년 전 그가 중앙청 할복 의거를 결행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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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 25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엄수된 故 무강 문일민 선생 사회장 영결식 현장 ⓒ 국가기록원

 
장례를 치르는 동안 영결식장에서는 그를 추모하기 위한 만장이 나부꼈다. 만장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武剛先生 千古 무강 선생의 영생을 기리며
生何榮死何辱 산들 무슨 영광이며 죽은들 무슨 욕이 되랴
男兒一生當如此翁 남아의 일생은 마땅히 이 노인처럼 살아야 하리
權寧暢 再拜哭輓 권영창이 두 번 절하고 곡하며 애도하다


영결식이 끝난 뒤 문일민의 유해는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그가 영면에 들게 될 국립서울현충원으로 향했다. 현재 문일민의 묘는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자리하고 있다.

문일민의 묘비 기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한 평생 오로지 조국의 광복과
겨레의 완전한 독립을 위하여
강철 같은 굳은 의지와
열화 같은 끓는 피로
고국산천으로 만주벌판으로
그리고 중국 대륙을 누비고 다니면서
왜적을 무찌르고
외세를 철저히 배격하시다가
가신 어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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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문일민·안혜순의 묘역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66) ⓒ 김경준

 
무강(武剛·武岡)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지식인·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채 변절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문일민은 일제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불안정한 삶을 살면서도 끝까지 지조를 잃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적극적인 의열투쟁으로 일제와 맞섰으며 대내적으로는 독립운동 진영의 쇄신을 위해 분투했다. 해방 후에는 다시 한번 조국의 독립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유혈투쟁을 전개했다. 오로지 '한국 독립'이라는 네 글자만을 가슴에 담은 채 살았던 문일민의 삶은 여전히 분단의 현실 속에 사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문일민은 생전에 무강(武剛·武岡)이라는 호를 썼다. 전자(武剛)는 '굳세고 용맹하다', 후자(武岡)는 '산처럼 굳세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무강이라는 호는 그의 삶을 대변하기에 매우 적절한 단어라 하겠다.

[문일민 주요 연표]

1894년 / 평안남도 강서군 함종면 함종리 출생
1919년 / 3.1혁명 참여 후 평양 애국청년단 가입·신흥무관학교 입학·한족회 중앙본부의 특명을 받고 평양에 잠입하여 애국청년회의 연락과 조직 강화 등의 사명 완수 후 귀환·대한청년단연합회 별동대 가입
1920년 / 대한광복단 가입·대한광복군총영 평양 폭탄대 대장으로 평남도청 투탄 의거 주도
1921년 / 상하이 싼위대학 입학 후 프랑스·멕시코 등 시찰
1923년 / 윈난육군강무학교 17기 입학
1925년 / 상하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이승만탄핵결의안> 제출
1926년 / 만주 정의부 군사참모주임으로 독립군 양성
1928년 / 정의부 특파원으로 황푸군관학교 교섭 활동·한국노병회 특별회원 가입
1929년 / 중국 국민혁명군 상교고급참모 임명
1930년 /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 입단 (단우번호: 239)
1931년 / 중국 상하이 고려물산공사 사장·한국군인회 조직
1932년 / 박창세·김동우·안경근과 함께 조소앙·김철을 찾아가 자금 횡령 및 <시사신보>에 게재된 안창호 비난 기사 추궁 (항저우 판공처 습격 사건)
1933년 / 한국독립당 감사 선임·대한교민단 정무위원 선임·의경대 명예대원 활동
1934년 / 박창세·나창헌·강창제 등 병인의용대 대원들과 함께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 암살 시도
1935년 / 민족혁명당 창당 참여·민족혁명당 광둥지부장 임명·민족혁명당 탈당 후 조소앙·박창세 등과 한국독립당 재건 선언
1936년 / 재건 한국독립당 탈당 후 민족혁명당 복당
1937년 / 항일장사후원회 상위원 임명
1940~1943년 추정 / 조선민족당 해외전권위원회 중앙 간부 선임
1943년 / 조선민족당 해외전권위원회가 조선민족혁명당에 흡수됨에 따라 조선민족혁명당 복당·임시정부 교통부 총무과장 임명
1944년 / 조선민족혁명당 중앙감찰위원 선출·임시정부 참모부 참모 임명·조선민족혁명당 탈당 후 조선민족혁명자통일동맹 입당·미군 정보연락장교 임명
1945년 / 신한민주당 중앙집행위원 선출
1946년 / 환국
1947년 / 국민의회 노농위원으로 보선·조국의 분단과 친일파들의 득세에 분개하여 미군정에서 할복 자결 시도 (중앙청 할복 의거)
1949년 / 서울 동신기업공사 사장 임명
1950년 / 애국정신선양회 이사장 선임
1952년 / 국제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경남경찰국에 40여 일 구금
1953년 / 애국동지원호회 회장 취임
1956년 / <한국독립운동사> 간행·흥사단 심사부장 임명
1960년 / 광복동지회 조직 후 심사위원 임명
1961년 / 구국연맹 중앙본부 부위원장 임명·광복동지회 부회장 임명
1962년 / 건국공로훈장 단장(현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
1963년 / 독립동지회 부회장 선임
1964년 / 고 오산 이강 선생 사회장례위원회 부위원장
1968년 / 서울 용산동 2가 9의 1 자택에서 별세


-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

[주요 참고문헌]
<문일민 이력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문일민, <韓國獨立運動史>, 애국동지원호회, 1956
흥사단사편찬위원회, <興士團五十年史>, 대성문화사, 1964
흥사단100년사위원회, <흥사단100년사>, 2013
#문일민 #무강문일민평전 #독립운동가 #흥사단 #애국동지원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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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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