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문 일원사진 좌측 상단 성벽과 중앙의 팔달문, 사진 하중앙의 곧은 골목까지가 화성 성벽이 사라진 곳이다. 우측이 남문시장이다.
이영천
이렇듯 사라지고 파괴된 성곽과 문화재가 제 모습으로 복원될 수 있었던 핵심에는 '화성성역의궤'라는 훌륭한 기록유산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훼손된 성곽과 그에 딸린 문루, 돈대, 공심돈 등은 이 기록을 토대로 1964년 복원을 시작 1975∼1979년 대부분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성 안 곳곳이 발굴과 복원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런 끊임없는 노력으로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유네스코에서 정한 규정과 세부 지침에 따라 보존·관리되고 있다. 아울러 화성 전 영역과 각종 문화재가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성곽 안팎이 역사문화보호를 위해 문화재청과 협의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문화재 및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 모든 건축과 개발 행위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지구 단위 계획으로 세세한 건폐율과 용적률, 건축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
이런 사유로 성곽 안팎은 명암이 동시 교차하는 공간으로 남았다.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슬럼화가 암(暗)이라면,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없는 옛 정취 물씬 풍기는 저밀도의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는 건 분명 명(明)이다. 공간은 화성 영향력 아래, 두 가지 상반된 가치를 지니고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다.
적응해가는 공간
이렇듯 강력한 규제로 성 안팎은 낡아지고, 인구 유출로 침체기에 빠진다. 도시 확산으로 인구가 빠져나간 한편, 화성의 문화적 영향력은 광역화했다. 주거 형태도 변해 가구당 거주 수가 급감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공간 노후화로 연결되어, 낡아 갈 수밖에 없었다. 낡아 감은 지대(地代) 하락을 가져왔다.
지대가 낮아지자, 공간으로 새로운 기능이 유입되기 시작한다. 낡은 집을 활용한 카페라든지, 전혀 새로운 기능으로 공방(工房) 유입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능의 유입은 복고풍을 좇는 사람들 발길을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잦아지는 발길만큼 공간의 문화기능은 커졌고, 이는 다시 공간을 변화시키는 순기능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재생 노력이 더해져 화성이라는 뛰어난 문화유산과 시너지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성안을 크게 몇 구획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성 한가운데 흐르는 수원천이 공간을 동서로 가른다. 동쪽 창룡문을 위시한 공간이 하나다. 서쪽은 행궁을 중심으로 크게 4구획으로 나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