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산누에나방 고치
일러스트 최원형
호텔 성벽 너머 가려진 바다, 그 속은 폐허였다
"바다가 죽었어, 바다가." 폐허가 된 바닷속을 표현한 어느 해녀의 말이다. 바닷속에는 감태 같은 해조류가 숲을 이루고 그 숲에 기대어 해양생물이 살아간다. 그런데 해조류가 사라지고 석회조류가 하얗게 암반을 뒤덮을 때가 있다. 이를 갯녹음이라 한다. 숲이 녹아내린다는 뜻이다. 해수 온도 상승과 오염물질 유입, 해안에 들어선 건축물에서 유입되는 석회석 등을 갯녹음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우리나라 동해, 남해 그리고 제주 연안에서 갯녹음이 진행 중이다.
해안가에는 초록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해마다 벌어지는 연례행사다. 기온이 올라가는 봄부터 제주 바닷가의 조간대 지역(썰물에 물이 빠져 드러나는 경계 지역)에는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바닷가를 뒤덮는 초록 풍경이 펼쳐진다. 초록의 정체는 구멍갈파래·괭생이모자반 같은 해조류다. 해안에 방파제 같은 시설물을 건설해서 해류의 흐름이 느려진 데다 주변 양식장에서 배출하는 영양염류가 풍부한 물, 거기다 수온 상승과 일조량 증가까지 더해지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해조류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결국 갯녹음 현상과 흡사한 원인은 모두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6월에 강연 일정이 있어 제주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첫 삼일은 서귀포시에서 지냈는데 화가 이중섭이 제주 시절 살던 동네에 숙소를 잡았다. 숙소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섶섬과 문섬이 보였다. 이중섭이 집 뒤 언덕(현재 이중섭미술관이 있는 곳)에 올라 그렸다는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보면 황톳길과 나무 사이, 초가가 어우러진 풍경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인다. 지금은 초가지붕과 황톳길과 나무가 있던 자리에 크고 높은 호텔들이 들어서 성벽처럼 바다를 가리고 있다.
근사한 도회지 풍경을 만들어주고 많은 관광객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이런 건물들과 해안가에 건설된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단지 바다 풍경을 가리는 정도를 넘어서 바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자연이 그리워 찾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자연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아이러니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