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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서비스로 월 450 매출? 제가 겪은 현실은 좀 다릅니다

유지비와 업무비를 제하면 남는 돈은 170만 원... '착취의 구조'를 없애야

등록 2023.06.28 15:15수정 2023.06.2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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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가 월 20일 일하고 천만 원 넘게 번다는 보수언론의 보도는 진짜일까?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연구원은 지난 5월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 970명을 대상으로 '특수고용노동자 임금 불안정 실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업종에 상관없이 개수임금제, 공짜노동, 각종 부대비용 및 본인 부담금 발생, 초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실태를 연속 보도한다.[기자말]
a  퀵서비스 노동자들의 현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의 현실. ⓒ pixabay

 
간혹 퀵서비스를 한다고 하면 주위에서 물어봅니다. "퀵서비스는 오토바이 한 대만 있으면 돈을 많이 번다는데 한 달에 얼마나 버세요?" 그럼 자존심 때문에 순수입이 아닌 매출을 얘기하곤 하는데 "대략 한 달에 400~500만 원 정도 찍어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또 되묻습니다. "생각한 것보다 많이 버네요, 열심히 일하고 조금 아끼면서 생활하면 위험한 오토바이 안 타고 작은 가게를 얻어 자기 장사도 할 수 있겠네요." 그제서야 저는 솔직히 말하곤 합니다 "맞는 말씀이신데 이것저것 비용 제하면 200만 원도 안 남더라고요, 뭐가 이리 많이 나가는지..." 

이번 달 매출 많이 올렸는데, 돈은 어디로 갔지?

저의 경우 퀵서비스 일을 하면서 450만 원 정도가 한 달 평균 매출이라면, 유지비로 고가의 유상보험료, 단말기 여러 개와 통신료, 주유비, 수리비에 감가상각비 포함하면 약 90만 원으로 매출의 20%를 지출합니다. 또 원천 징수하는 업무비를 내야 하는데 수수료, 일비(출근비), 프로그램 사용료, 자동배차 어플 구입비, 고용보험, 산재보험, 적재물보험, 운전자보험과 원천세액을 공제하는 것이 약 162만 원으로 36%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유지비와 업무비를 다 제하면 매출의 44%인 198만 원만 남게 됩니다. 일하는 중에 담배도 피우고, 점심 먹고, 음료 한잔 먹고 남은 170만 원만 우리 가족 생활비로 씁니다. 

사실 퀵서비스 기사들 중 450만 원 매출을 찍는 저는 평균 이상이긴 합니다. 대다수의 퀵서비스 기사님들은 이보다 훨씬 못한 실정이겠지요. "몸으로 하는 막노동인데 무슨 업무상 드는 비용이 절반을 넘느냐?"라면서 저보다 더 흥분하여 말씀하시는 분들도 주변에서 종종 만납니다. 

이런 수익 구조가 처음부터 생긴 것은 아닙니다. 퀵서비스업은 나름 꽤 역사가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사무실에 대기하면서 순번대로 오더를 받고 일비, 혹은 주비나 한 달 수수료만 내면 일한 만큼 일당을 벌어 가는 그런 구조였습니다. 그런대로 편차는 있지만 당시에는 나름 만족스런 일당을 벌어갔습니다. 

쪽지나 무전기로 주던 퀵 배달 오더가 PDA단말기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플랫폼노동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수익 구조는 훨씬 복잡해지고 실제 퀵서비스 배달을 하는 노동자 위주가 아닌, 물류업 사업자 위주의 방식으로 재편되어 버렸습니다. 


"플랫폼이 다같은 플랫폼이 아닙니다"

최근 물류가 황금알을 낳는 분야라고 말합니다. 퀵서비스업도 물류산업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최신식 IT 기술을 사용한 플랫폼도 다양해 졌고, 노동자들도 이를 활용하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기술은 진보했지만, 우리 퀵서비스 기사처럼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의 현실은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퀵서비스는 운영프로그램(플랫폼) 제공자 외에 중간 사업자와 틈새 사업자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그중 운영프로그램 제공 사업자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퀵서비스 업체(*고객에게 주문을 받아 퀵서비스 기사에게 일감을 던져주는 업체)를 두 개 그룹으로 나눠놓았습니다. 퀵 기사들은 두 그룹 모두의 일감 정보(퀵 오더)를 모두 받기 위해 1개 프로그램을 사용하지만 2배의 사용료를 내야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에 따라 각 그룹 퀵 오더를 수신하기 위한 PDA단말기 구입비, 통신비, 자동배차 어플 구입료 등의 업무비도 눈덩이 굴리듯 늘어나게 됩니다. 운영프로그램 제공자는 '데이터 부하 때문에 그룹을 나눌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하고, 퀵서비스 업체는 직접고용을 하지 않으니 업무비용에 대한 부담이 덜고, 결국 모든 부담을 특수고용직인 퀵서비스 기사가 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퀵서비스 업체들은 고객이 내는 퀵배달 비용 중 업체가 가져가기로 책정된 수수료 이외에도 희한한 명목을 대며 일부 비용을 또 제하고 나서야 기사에게 돈을 지급합니다. 이는 일종의 부도덕한 임금 착취행위입니다만, 퀵서비스 기사는 '특수한 고용관계'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행정 담당자들도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가 만들어 권장하고 있는 표준계약서가 있기는 하지만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주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게 표준계약서를 변형하여 근로계약을 맺습니다. 때문에 투명한 수수료 지급은 현장에선 머나먼 일입니다. 

'4차 산업혁명, 플랫폼 경제 시대'라는 허울 좋은 말 뒤에는 이처럼 구조 속에 착취 받는 플랫폼 노동자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단계의 복잡한 구조를 가진 퀵서비스 산업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플랫폼 노동자 중에서 가장 열악한 구조적 피해자는 퀵서비스 노동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저는 그래서, 퀵서비스 기사의 안정적인 노동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특고노동자의 실질임금 인상과 공짜노동을 없애고 업무 관련 비용을 노무 제공을 받는 업체가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표준계약서 의무화 역시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서비스연맹 전국퀵서비스노조 김태형 위원장이 기고했습니다.

#서비스연맹 #퀵서비스 #특고 노동자 #특수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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