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 입장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의 개 호루라기, "문재인은 간첩"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설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나는 열정을 믿는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자연에도 발전, 절정, 쇠퇴가 있다. 러시아는 아직 최고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는 길을 가고 있다."
2016년에 <파이낸셜 타임즈> 워싱턴 지국장을 역임한 찰스 클로버는 독재자 푸틴의 연설에서 '열정(passionarity)'이라는 단어의 등장 여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간파한 바 있다.
클로버에 따르면 열정이라는 단어는 푸틴의 정신적 원천인 러시아의 역사학자 레프 구밀레프가 제시한 '열정적 인간'으로부터 유래됐다. 위대한 정복자와 정치인, 시인, 작가, 음악가, 예술가는 의식적으로 사회의 전통과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기존 질서에 도전한다. 그들이 바로 새로운 지식, 새로운 믿음,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열정적 인간'이다. 정복자 칭기스칸과 알렉산더 대왕이 바로 그런 인간이다.
푸틴의 연설에서 이 단어는 특정 그룹에게만 들을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런 단어를 워싱턴 정가에선 '개 호루라기(dog Whistle)'라고 한다. 푸틴은 연설문에서 그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전쟁과 정복의 욕망을 저항할 수 없는 말로 발표할 때 열정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한다. 이 단어가 사용되면 국가 내의 특정 서클은 푸틴의 인식과 이해를 빠르게 공유하며 결집한다. 푸틴 연설에서 이 단어가 등장했다는 것은 전쟁과 같은 중대한 국면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유달리 선민의식과 소영웅주의가 강한 윤석열 정권은 권력 내에서 충성 서클의 결집을 도모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문재인은 간첩"이라는 한 문장이다.
이 말이 사용되는 순간 정권 내의 충성 그룹은 열정적으로 결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현 정권의 '개 호루라기'다. 물론 이 말은 공적인 자리에서 정부 관료가 사용하지는 않는다. 주로 극우 유튜브나 집회, 토론회 등에서 개인적 의견으로 표현될 때 나타난다.
그러나 이 말을 중심으로 정권의 외곽에서 용병이 조직되고 윤 대통령에 대한 찬양가가 울려 퍼지는 심리적 유격전이 수행된다. 문재인이란 공격 목표가 선명해질 때 투쟁의 에너지는 활성화 된다.
이런 유격 전술을 촉발시키는 당사자는 윤 대통령 본인이다. 올해 3월의 삼일절 경축사와 4월의 미국 의회 연설에선 야당을 지칭해 "전체주의 세력"이라고 했고, 6월 자유총연맹 축사에서는 지난 문재인 정부를 지칭해 "반국가세력"이라고 또다시 저격했다. 과거 정부라는 악마와 일전을 불사하는 "자유를 향한 투쟁"이 권력의 본질이자 사명이 된다.
국민을 상대로 한 심리적 유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