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 지도말레이시아 박물관에 전시된 말라카 전성기의 지도(박물관에서 촬영).
안정인
1511년 말라카와 포르투갈의 전쟁 당시 왕이자 술탄인 마흐무드는 가족들을 데리고 달아난다. 왕이 나라를 버리고 탈출했기 때문에 말라카 왕국의 중심지였던 현재의 '말라카 주'에는 왕이 없다. 말라카 주는 주지사 선거를 하는 4개 주 중 하나다.
마흐무드의 가족은 말레이 반도 아래쪽에 자리를 잡는다. 그 마흐무드 왕의 아들 알라우딘 리아야 샤가 말레이 반도 끝, 지금의 조호르 지방에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 조호르 왕국이다.
조호르 왕국은 16-17세기 포르투갈령 말라카와 말라카 해협을 두고 경쟁을 벌일 정도로 성장한다. 왕조의 성립 배경이 이렇다 보니 조호르 왕국의 지배자들에게는 포르투갈을 향한 적개심과 말라카를 탈환하겠다는 열망이 강했다. 조호르 왕국은 몇 번이고 말라카 탈환을 위해 전쟁을 벌인다. 죽음을 앞둔 왕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면
서 '포르투갈만은 안 돼. 말라카를, 말라카를 꼭……'이라고 유언을 전하는 장면과 같은 상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마침내 1641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연합해 포르투갈을 말라카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조호르 왕국의 땅이 되지는 못했다.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말라카의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를 교수대로 보낸 그 혁명은 멀고 먼 말레이시아까지 영향을 준다. 유럽의 하늘을 날던 나비 한 마리가 무심코 한 날갯짓이 엄청난 파급력으로 말레이시아를 덮친 격이다.
프랑스혁명이 성공한 이후 놀란 인근(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영국, 러시아 같은 나라들) 국가들이 연합하여 프랑스 공화국 정부에 전쟁을 선포한다. 대부분의 전투는 프랑스 동부와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곳에서 벌어졌다. 유럽이 좁긴 좁다.
1795년 프랑스 공화군을 피해 네덜란드 총독이던 빌럼 5세가 영국으로 망명한다. 영국의 보호에 기대야 했던 빌럼 5세는 당시 네덜란드가 가지고 있던 해외 식민지를 영국에 내놓는다. 그 식민지 중에 말라카가 포함되어 있었다.
말레이 반도, 영국의 통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