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오전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붙은 주택담보대출 안내문,.
연합뉴스
지난 4일 정부는 2023년 하반기 경제 방향을 발표하면서 '세입자 보호조치'로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임대인에게 1년간 한시적으로 대출규제를 완화해주기로 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ebt Service Ratio) 40%에서 DTI(총부채상환비율‧Debt to Income) 60%로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을 보는 DSR에 비해 주택담보대출 외에는 원금이 아닌 이자만 포함시키는 DTI로 기준을 바꾸면 임대인들은 대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된다.
GDP 대비 가계부채가 100%를 초과하여 OECD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상황에서, 또 한국은행, IMF 등 국내외 기관에서 가계대출에 대해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정부가 임대인의 대출규제를 완화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1년 하반기, 2022년 상반기의 전세가격지수(한국부동산원 기준)가 정점을 찍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역전세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문제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나름대로 우려가 있어서 정부가 낸 정책일 터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적실한 정책인지는 더 따져보아야 한다.
임대인 대출규제 완화가 유일한 방법인가?
임대인 대출규제 완화로 인한 득과 실을 검토해보자. 대출규제가 완화된다면 역전세로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웠던 임대인은 집을 팔지 않아도 된다는 개인적인 실익이 있을 수 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임차인은 최악의 경우 전세보증금반환소송을 통해 거주주택이 경매로 낙찰될 때까지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 임대인의 대출규제 완화로 인해 전세보증금을 안정적으로 회수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임대인 대출규제 완화를 발표하면서 '세입자 보호조치'라고 명시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반면 대출규제 완화로 인한 리스크로는 가계부채 증가를 꼽을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1분기 가계대출 차주들은 이미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대출원리금 상환에 사용할 정도로 가계부채가 높은 상황 속에서 부채를 더 늘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옳은 방식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다른 방식이 없다면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해 대출규제를 어쩔 수 없이 완화해야할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지 않다.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안으로 주택을 매각해서 매각대금의 일부를 전세보증금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끼고 주택을 매입했다면 거주 목적보다는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더 큰 투자 수요 또는 투기 수요라고 볼 수 있다. 투자(투기)에 성공해서 시세차익을 개인이 가져가는 것처럼 실패하면 자산을 매각해서 빚을 갚는 것이 투자의 기본 상식이다.
정부는 이 상식을 건너뛰고 대출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상식을 건너뛸 때는 다른 방안이 없거나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인데 지금이 그러한 때인지는 의문이다. 만약 지난해 말처럼 주택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는 상황이라면 전세보증금 반납을 위한 주택 매도 물량이 주택시장의 경착륙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이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정부의 각종 규제완화와 특례보금자리론 등 막대한 유동성을 주택시장에 공급하면서 주택가격 하락이 거의 멈춘 상황이다. 주택가격 조정이 끝나고 하반기부터 다시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부쩍 늘어난 상황 속에서 굳이 가계부채 리스크를 키우는 임대인 대출 규제 완화 정책을 낼 필요가 있었을까?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무척이나 강조하는 정부가 민간의 빚에 대해서는 자산 매각 등을 통한 재정건전성 강화보다는 부채 돌려막기 방식을 권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대출규제 완화 정책, 실제 효과 있을지 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