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시간을 알리는 메시지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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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시간에 맞춰 밤 산책을 하며 기다리기도 하고, 정말 늦은 시간이라면 주차장에 내려가 차에서 기다리는 날도 있다. 어느 날은 졸려서 눈을 반밖에 뜨지 못하기도 하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도, 심지어 늦은 귀가와 더불어 술에 취한 모습이 보기 싫은 날마저도 우리의 패턴은 변함이 없다.
하루 종일 나가 있던 반려인을 만난 반려견들의 반가운 마음을 최대한 밖에서 표현하고 함께 집으로 들어오면, 늦은 시간에 발생 되는 소음은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마음이 낳은 효과
물론, 남편의 늦은 귀가 시간에 맞춰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마음이 늘 좋을 수는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위층에선 거실을 가로질러 쿵쿵쿵 걷는 소리가 들렸다. 이럴 때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위층은 바로 아래층인 우리 집을 배려하지 않는데?'라는 마음이 든다.
이런 날이면 몇 시가 되었건 상관없이 남편을 집에서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금 마음을 고쳐먹는다. 괜스레 속상하고 어쩐지 억울한 마음에 늦은 시간에 짖도록 놔둔다면 짖는 소리는 위층뿐 아니라 옆집이나 아래층, 또 다른 이웃 세대에도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애초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내 만족으로 시작한 일이다. 늦은 시간 들리는 이웃의 소음이 나부터가 싫기 때문에 시작된 행동이다. 내가 싫으니 나부터 조심하자는 마음이랄까. 비록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최대한 이웃에 폐가 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것. 공동주택에 살면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것뿐.
사사로운 정을 나눌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적어도 살면서 얼굴 붉히는 일은 만들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의 일환이다. 이웃들이 이런 나의 노력을 알아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이웃도, 나의 위층도 이런 마음을 가져준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질 뿐. 그렇지 않더라도 별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이런 마음조차도 욕심일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런 층간 소음 예방을 위한 행동이 그저 이웃을 위한 배려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늦은 시간 귀가하는 가족을 마중 나가다 보니 살면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미운 순간도 오래 끌고 가지 않게 된다는 장점도 있으니까.
결혼 생활 13년을 넘기도록 크게 다툰 적도, 냉전의 시간을 오래 끈 적도 없었던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아파트 이웃과 멀어지지 않으면서 내 가족과는 그만큼 가까워지는 계기. 그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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