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전기요금 청구서가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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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 정부는 시청자의 이익을 위해서 분리 징수를 시행했을까. 그럴 리는 당연히 없다. KBS가 고분고분하지 않으니까, 다시 말하면 전임 정부에서 임명한 사장을 바꿀 수 없으니까 괴롭히는 것뿐이다.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괴로울 것이다.' KBS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리면서 신호를 보내는 거다. 만약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래도 좋다. 식물로 만들면 그뿐이니까. KBS가 어떻게 되건, 방송이 어떻게 되건, 그건 '용산(대통령실)'의 관심 범위가 아니다.
2500원이건 2500만 원이건 돈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100원이라도 아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면 여론은 찬성할 거다. 도대체 KBS가 뭔데? KBS가 없으면 안 되나? 내 돈 2500원을 왜 가져가는데? 난 KBS 안 보는데? KBS 방만하다며? 직원들은 전부 도둑놈들이라며? 정권 바뀔 때마다 부역질하는 정치 방송국 아냐? 도대체 KBS가 왜 있어야 하는데?
KBS는 '용산 것'이 아니다
정말 그럴까. KBS를 떠난 지 이제 10년이니 나도 이제 평범한 시민이다.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따져보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KBS는 정부가 소유하는 구조가 아니라, 용산이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라, 국민이 소유하고 지배하는 구조다. 국민의 재산이고, 따라서 내 재산이다. KBS는 내 거란 말이다. 만약 KBS에 문제가 있어서 개선과 변화가 필요하다면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5년짜리 일개 정권에게는 KBS를 망가뜨릴 권한이 없다. 어디 감히 내 거에 허락도 없이 손을 대는가.
둘째. 나도 KBS를 잘 안 본다. 물론 MBC도 SBS도 잘 안 본다. 요즘은 넷플릭스를 주로 보고, 아마존 프라임도 가끔 본다. 그럼 KBS도 없애고, MBC도 민영화하면 우리 사회는 건강해지고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수신료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열린음악회 같은 프로그램을 열거하는 건 무의미하다. 나는 그 프로그램들을 보지 않는다. KBS가 방만한지 아닌지를 굳이 논쟁할 필요도 없다. KBS는 딱 대한민국 평균 수준의 효율성과 윤리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13년의 KBS 경험으로 말하면, KBS가 다른 언론과 다른 게 딱 하나 있다. 취재를 할 때도,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기사를 쓸 때도, 편집을 할 때도, 출장을 갈 때도, 출장비를 정산을 할 때도 KBS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수신료'를 생각하게 돼 있다. 파블로프의 개 같은 거다.
"아. 우리는 수신료를 받는 조직이지. 우리 월급은 수신료에서 나오지. 우리 제작비는 곧 수신료지."
나라가 주는 월급을 받는다는 느낌과는 다르다. 정부가 아닌 공적인 영역에 종사하고 있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은 사람을 다르게 행동하게 하고, 결국 프로그램이 달라지게 된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그렇다.
'2500원 자산'의 크나큰 가치

▲ 서울 여의도 KBS 본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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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제약이 KBS 사람들의 상상력을 움츠러들게 하고 용기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제약을 가진 미디어가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귀하다. 2500원을 내고 이런 종류의 자산을 가지는 건 사실 남는 장사다. 반면에 기업이 주는 광고로 먹고사는 미디어는 흔하디 흔하다. 너무도 희귀한 우리의 자산을 이렇게 쉽게 망쳐 버려도 되는 건가. 그런 짓을 남의 일처럼 두고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다른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지만 일반적으로 방송국 뉴스가 끝날 때면 협찬 광고 목록이 화면에 노출된다. 언젠가는 미국 라디오처럼 앵커가 광고를 준 기업들의 명단을 읽게 될 거다. 언젠가는 광고주에게 감사하다고 멘트를 할지도 모른다. 아예 삼성이, 현대가 방송국을 차릴 수도 있을 거다. 지금 KBS를 망쳐 버린다면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사무치게 후회할지도 모른다.
분리 징수 시행. 대단하다. 이건 박근혜이건 문재인이건 역대 정부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부분이다. 노골적으로 치사한 수라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없는 시대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이렇게 쉽게 진행이 된다면, 이 정권이 다음에는, 혹은 다음 정권이 무엇을 할지 상상할 수 있겠나. 그때는 KBS라는 문제는 오히려 작을 수도 있다. 나는 좀 무섭다.
분리징수 문제가 헌법재판소로 가게 됐다고 한다. 탄원서에 서명할 수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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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KBS에서 기자일을 시작했다.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쳤고 '미디어포커스' 등을 제작했다. 2010년 KBS에 새노조(언론노조KBS본부)를 만들었고 편집국장으로 노보를 제작했다. 2013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로 옮겼다. 대기업의 치부부터 검찰의 수상한 뒷거래까지 가리지 않고 취재했다. 논픽션 <죄수와 검사>를 심인보 기자와 함께 썼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를 진행했다. 2022년 기자 생활을 접었다. 기자도 이야기를 쓰는 직업이지만 이야기를 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읽고 또 읽었던 전래동화와 같이 매혹적인 이야기를 쓰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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