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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를 망가뜨리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10년 전 KBS 그만둔 기자가 바라본 윤석열 정부 TV수신료 분리 징수

등록 2023.07.21 11:52수정 2023.07.2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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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작가(전 KBS·뉴스타파 기자)의 브런치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편집자말]
미국에서 운전을 할 때 가급적 음악보다 라디오를 틀어 놓는다. 사람하고 얘기할 일도 자주 없는데 운전할 때라도 영어를 들어 보겠다는 마음인데, (당연히) 뭐라고 떠드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대개 꾹 참고 듣지만, 정 견디기 힘들 때면 김광석이나 잔나비 같은 음악을 재생한다. 노래든 말이든 스피커에서 한국어가 나오면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다.

라디오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포맷이 비슷하다. 진행자가 뭐라 뭐라 떠들다가, 광고, 청취자 전화 연결해서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광고, 뉴스 연결, 또 광고, 날씨 연결, 그리고 광고, 교통정보 연결, 한 번 더 광고의 무한 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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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 pexels

 
한국과 다른 건 광고의 비중이 '너무 너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체감상으로는 프로그램과 광고가 거의 5대 5의 비율이다.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광고를 넣는 게 아니라, 패션 잡지처럼 광고 사이사이에 프로그램이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프로그램과 광고의 경계가 거의 없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리포터가 날씨를 한참 얘기하다가 "오늘 저녁 날씨가 좋은데 바비큐 안 하니? 여기 해리슨 로드에 있는 에이스 하드웨어(ACE HARDWARE)에 가면 바비큐 장비를 싸게 구매할 수 있단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리고 나서 또 기업 커머셜이 쭈욱 붙는다. 심지어 뉴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다르게 광고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미디어의 미래라고나 할까. 조만간 남의 일이 아닐 거다.

미국 미디어 시장은 거의 완전하게 시장에 맡겨져 있다. 광고를 쟁취하기 위한 무한 경쟁. 경쟁은 혁신을 낳고, 혁신은 이용자의 후생을 증진한다는 무척이나 원론적인 시장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그 메커니즘의 결과가 시민들에게, 미국이라는 공동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TV수신료 분리징수', 왜 기획했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한국 정부가 KBS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서 징수하는 시행령을 의결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표면적으로는 수신료를 없애는 게 아니라 징수 방법을 바꿨을 뿐이기는 하다. 하지만 분리 징수라는 것이 현재 KBS에 어떤 타격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현 정부가 그 타격을 왜 기획했는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분리 징수는 당연히 수신료 수입을 감소시킨다. 징수를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을 거다. KBS 수신료는 1981년 2500원이 된 뒤 40년 넘게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당시 짜장면 값이 400원이었다고 한다. 물가는 20배 정도 올랐다. 수신료 인상이 KBS의 숙원 사업인 상황에서 오히려 수신료를 실질적으로 대폭 인하하는 정책이 시행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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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전기요금 청구서가 꽂혀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현 정부는 시청자의 이익을 위해서 분리 징수를 시행했을까. 그럴 리는 당연히 없다. KBS가 고분고분하지 않으니까, 다시 말하면 전임 정부에서 임명한 사장을 바꿀 수 없으니까 괴롭히는 것뿐이다.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괴로울 것이다.' KBS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리면서 신호를 보내는 거다. 만약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래도 좋다. 식물로 만들면 그뿐이니까. KBS가 어떻게 되건, 방송이 어떻게 되건, 그건 '용산(대통령실)'의 관심 범위가 아니다.


2500원이건 2500만 원이건 돈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100원이라도 아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면 여론은 찬성할 거다. 도대체 KBS가 뭔데? KBS가 없으면 안 되나? 내 돈 2500원을 왜 가져가는데? 난 KBS 안 보는데? KBS 방만하다며? 직원들은 전부 도둑놈들이라며? 정권 바뀔 때마다 부역질하는 정치 방송국 아냐? 도대체 KBS가 왜 있어야 하는데?

KBS는 '용산 것'이 아니다

정말 그럴까. KBS를 떠난 지 이제 10년이니 나도 이제 평범한 시민이다.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따져보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KBS는 정부가 소유하는 구조가 아니라, 용산이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라, 국민이 소유하고 지배하는 구조다. 국민의 재산이고, 따라서 내 재산이다. KBS는 내 거란 말이다. 만약 KBS에 문제가 있어서 개선과 변화가 필요하다면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5년짜리 일개 정권에게는 KBS를 망가뜨릴 권한이 없다. 어디 감히 내 거에 허락도 없이 손을 대는가.

둘째. 나도 KBS를 잘 안 본다. 물론 MBC도 SBS도 잘 안 본다. 요즘은 넷플릭스를 주로 보고, 아마존 프라임도 가끔 본다. 그럼 KBS도 없애고, MBC도 민영화하면 우리 사회는 건강해지고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수신료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열린음악회 같은 프로그램을 열거하는 건 무의미하다. 나는 그 프로그램들을 보지 않는다. KBS가 방만한지 아닌지를 굳이 논쟁할 필요도 없다. KBS는 딱 대한민국 평균 수준의 효율성과 윤리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13년의 KBS 경험으로 말하면, KBS가 다른 언론과 다른 게 딱 하나 있다. 취재를 할 때도,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기사를 쓸 때도, 편집을 할 때도, 출장을 갈 때도, 출장비를 정산을 할 때도 KBS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수신료'를 생각하게 돼 있다. 파블로프의 개 같은 거다. 

"아. 우리는 수신료를 받는 조직이지. 우리 월급은 수신료에서 나오지. 우리 제작비는 곧 수신료지."

나라가 주는 월급을 받는다는 느낌과는 다르다. 정부가 아닌 공적인 영역에 종사하고 있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은 사람을 다르게 행동하게 하고, 결국 프로그램이 달라지게 된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그렇다.

'2500원 자산'의 크나큰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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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KBS 본관의 모습. ⓒ 연합뉴스

 
물론 이런 제약이 KBS 사람들의 상상력을 움츠러들게 하고 용기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제약을 가진 미디어가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귀하다. 2500원을 내고 이런 종류의 자산을 가지는 건 사실 남는 장사다. 반면에 기업이 주는 광고로 먹고사는 미디어는 흔하디 흔하다. 너무도 희귀한 우리의 자산을 이렇게 쉽게 망쳐 버려도 되는 건가. 그런 짓을 남의 일처럼 두고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다른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지만 일반적으로 방송국 뉴스가 끝날 때면 협찬 광고 목록이 화면에 노출된다. 언젠가는 미국 라디오처럼 앵커가 광고를 준 기업들의 명단을 읽게 될 거다. 언젠가는 광고주에게 감사하다고 멘트를 할지도 모른다. 아예 삼성이, 현대가 방송국을 차릴 수도 있을 거다. 지금 KBS를 망쳐 버린다면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사무치게 후회할지도 모른다.

분리 징수 시행. 대단하다. 이건 박근혜이건 문재인이건 역대 정부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부분이다. 노골적으로 치사한 수라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없는 시대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이렇게 쉽게 진행이 된다면, 이 정권이 다음에는, 혹은 다음 정권이 무엇을 할지 상상할 수 있겠나. 그때는 KBS라는 문제는 오히려 작을 수도 있다. 나는 좀 무섭다.

분리징수 문제가 헌법재판소로 가게 됐다고 한다. 탄원서에 서명할 수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링크).
#KBS #수신료 #미디어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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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KBS에서 기자일을 시작했다.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쳤고 '미디어포커스' 등을 제작했다. 2010년 KBS에 새노조(언론노조KBS본부)를 만들었고 편집국장으로 노보를 제작했다. 2013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로 옮겼다. 대기업의 치부부터 검찰의 수상한 뒷거래까지 가리지 않고 취재했다. 논픽션 <죄수와 검사>를 심인보 기자와 함께 썼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를 진행했다. 2022년 기자 생활을 접었다. 기자도 이야기를 쓰는 직업이지만 이야기를 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읽고 또 읽었던 전래동화와 같이 매혹적인 이야기를 쓰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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