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앞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이 학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서초구 S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글을 흰 천에 적고 있다.
권우성
지난 18일, 지난해 3월 첫 임용된 새내기 초등학교 교사가 학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교사노조는 1학년 담임이었던 교사의 죽음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일단 고인이 남긴 메모 형식의 일기장에는 특정 학부모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진상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게 없지만,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퍼지면서 온나라가 추모의 물결로 뒤덮였다. 곳곳에 추모 공간이 마련되었고, 22일에는 서울 보신각과 청계천 등에서 수천 명의 교사들이 모인 추모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근본적 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추모의 흐름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자, 지금이 '노'를 저을 때라고 판단한 '선수'들이 난데없이 등장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선수'는 언론이었다. 뉴데일리는 20일 <서초구 초등교사 일기장 내용 입수… 2월에도 극단 선택 시도 정황>이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 등으로 우울감을 호소"했다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드러내면서도 일기 내용을 어떻게 접했는지, 유가족의 허락은 받았는지 등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었다.
학생인권 보장이 교권 추락을 불렀다는 이들
다음날인 21일에는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선수'로 나섰다. 이 장관은 서초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열린 현장교원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이 붕괴되고 있다. 시·도 교육감들과 협의해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고 제기되는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수장이 교권과 학생인권을 적대적 모순으로 바라보는 전근대적 인식에 빠져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세 번째 '선수'는 여당과 대통령실이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21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내세워 학생의 인권만 강조하다 수많은 교사들의 인권을 사지로 내몬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발생한 초등 교사의 극단적 선택은 학생인권조례가 빚은 교육 파탄의 단적인 예다. 과거 종북주사파가 추진했던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의 일환"이라고 색깔론을 제기했다.
학생인권 보장이 교권 추락을 불러왔다고 믿는 '선수'들은 80년대 '좋은 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 당시 적잖은 교사들은 학생의 인권을 깔아뭉개는 갑질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그게 교육이라고 합리화했다.
1분 늦었다고 운동장 10바퀴 뜀박질을 시키고, 성적 떨어졌다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머리 길다고 뺨을 후려치면서도 "다 너희들 성공하라고 그러는 거야" 거짓말을 일삼았다. 한 마디로, 학생인권을 억압한 대가로 교권을 누렸다. 설마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위에 언급한 서넛 이외에도 베테랑 '선수'가 많다. 그분들에게 딱 한 가지만 묻고 싶다. 말을 내뱉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딸 자식을 잃은 부모 심정을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꿈에 그리던 교단에서 퇴근도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딸 자식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참담한 부모의 심정을...
수많은 교사들이 뛰쳐나온 이유... 이 현실을 고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