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게티이미지뱅크
한편, 내가 최근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곳에서 근무 시간 동안 식사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한 끼, 한 끼 잘 해결하는 것이 일인 1인 가구에게는 이만큼 삶의 질을 올리는 것도 없다. 동료들과 단체를 밥을 주문할 때면, 번역기를 돌려 독일어 공부를 하게 되는 것 또한 덤이다.
다만 유일한 비건인 본인은 항상 주문과 함께 'Veganes Essen(독일어로 비건 음식을 뜻하는 단어)'를 덧붙여야만 한다. 앞서 두어번, 음식 주문 받는 식당에서 식당 측의 착오로 그것이 비건 지향이 아닌 단순한 채소 볶음 주문을 요청한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모든 메뉴를 돼지 볶음으로 통일해 배달한 적이 있었다. 아, 이 때 쌀밥만을 씹어 먹어야만 했던 날 두고 동료들은 그들이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연민을 보여주었다.
만일 그 날 내게 '밥은 먹고 다니냐'며 부친이 평소처럼 문자를 보냈더라면 나는 '응, 정말 밥만 먹었어'라며 서러운 마음을 표출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한국에서의 채식 10년 생활 중 이런 일은 사실 꽤나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다.
채식인의 곤혹, 하지만
제대로 갖추어 못 먹는 것도 그렇지만, 채식인으로서 자주 겪는 또 하나의 곤혹은 비건이 아닌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 때문이다. 카페에서도 더러 귀리나 두유가 아닌 소젖 우유를 가리켜 'Normal Milch(일반우유)'라고 부르는데, 동료들은 자신의 음식을 독일어로 주문 할 때면 'Normal Essen(일반식)'이라고 적어 보낸다.
논비건 요리를 '노말', 그러니까 '평범한 음식' 혹은 '일반식'으로 부른다는 사실이 새삼 생경했다. 물론 채식 12년차 삶의 기본값과 이외 여전히 대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기본값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비행기 기내식을 사전에 '채식'으로 요청해두는 것처럼 채식이 곧 '특별 요청'이 되는 것인데 처음에는 'Normal'이라는 단어에 내가 귀속되지 못한다는 소외감으로 마음이 어려웠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건 채식이 '특별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달래보기도 한다.
돼지 볶음을 식사로 배달 받은 날, 다른 동료들은 남은 내 음식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룸메이트나 친구에게 줄 요량으로 그 음식을 퇴근길에 챙겨오는데 마음이 한켠이 무거웠다.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평범한 음식일 이것이 내게는 그렇지 못했으니까. 고기라는 표현을 지양하는 것 또한 이미 단어 안에 '식용'으로서의 의미가 내포되기 때문이다.
먹는다는 행위는 실제 신체를 운용하기에 필요한, 즉 '연료'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욕구를 채우는 일이며 다양한 식감과 향을 즐기는 미식이라는 영역의 탐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 또한 '먹는 것에 진심'인 한 사람으로서, 주변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내게 '고기 못 먹어서 어떡해요', '고기가 생각나진 않아요?'라고 할 때 '제가 정 먹고 싶으면 진작 먹었을 것이다'라고 답한다.
나는 육식이라는 영역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들로 '전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요즘도 여전히 계절별로 땅에서 자라는 형형색색의 채소들을 두고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아마 장마철이 한창일 요즘의 한국, 이맘때쯤이면 그리워지는 한국의 '평범한 음식'은 콩국수다.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매우 귀하고도 특별하며 누군가에게는 이국적이기까지 한 음식이지만 말이다. 동네 시장에서 페트병에 넣어 팔던 콩국물의 맛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당분간은 이것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느라 머리와 마음이 조금 분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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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을 거쳐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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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이 육식 포기? 아뇨, 새 감각으로의 전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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