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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반려견과 조심조심 산책을 나갑니다, 왜냐면

100% 실외배변견과 살아가는 법

등록 2023.08.02 15:04수정 2023.08.0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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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의 산책 ⓒ 이정은

  
"오늘 날씨는 어떨까?"


어제와 마찬가지로 더운 날이 될 테지만, 알면서도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날씨부터 확인하고는 한다. 장마보다는 우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너무나 당연하게 비가 쏟아지던 날이 지나가고 나니,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더위가 한창이다. 아,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울까.

우리 부부는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비록 귀엽고 화려한 옷을 계절별로 마련한다거나, 녀석들을 위한 특별한 먹거리를 준비한다거나,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서 놀 수 있는 반려견 동반 카페에 찾아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기본으로 지키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매일 하는 산책이다. 이렇게 하루의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두 녀석 중 한 아이는 100% 실외 배변만 한다. 처음 만나게 된 두 살 때부터 아홉 살이 된 지금까지 집에서 대소변을 본 횟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이다. 한 번은 장염에 걸렸을 때고 나머지는 실외 배변만 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을 때인데, 그마저도 녀석의 입장에선 참다 참다 어쩔 수 없이 '실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실외 배변만 하는 녀석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산책을 나간다는 것을 아는 이웃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재미있는 건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반응이 확연히 다르다는 거다. 전자의 경우엔 '아이고, 힘들겠어요'이며, 후자는 '어머, 똑똑해라'로 대표될 수 있다.

해 본 사람은 안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산책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거기에 배변이 필수 조건으로 따라붙게 된다면 굉장한 노력과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을. 더구나 배변이라는 건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노즈 워크로 에너지를 소모시켜주는 등의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폭염이 기승이더라도 

요즘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이 경우에 따라선 오히려 사정이 더 좋다고 볼 수 있다.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날이면 사람처럼 우산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강아지용 우비를 입히고 밖으로 나가야한다. 물론 우비를 입었다 하더라도 젖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평소처럼 긴 산책이 아니어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우비를 말리고, 젖은 털을 말려야 한다. 그걸 하루 세 번씩 며칠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강아지에게 '아홉 살이면 집에서 알아서 일도 좀 봐야 하는 거 아니니?'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 나오는 순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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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지는 날의 산책 ⓒ 이정은

 
한번은 내가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지다 퇴원을 했을 때였다. 수술 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내 몸 하나 겨우 건사하며 걸을 정도였는데, 집에서는 배변을 전혀 하지 않는 녀석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짧게나마 산책을 나갔다. 함께 하는 산책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흥이 오른 녀석이 갑자기 이렇게 저렇게 몸을 비틀어 가슴줄을 풀고는 지하주차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다시는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목줄로 바꾸었지만,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이다.

그렇다. 이처럼 실외 배변만 하는 녀석과 살게 되면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태풍이 불고 뙤약볕에 녹아내릴 것 같은 날에도, 한파에 몸이 얼어버릴 것 같은 날에도, 그리고 내 몸이 아파 쓰러질 것 같은 날에도 배변을 위한 산책은 절대 쉬어갈 수가 없다는 게 현실이다. 힘들지만 해야만 하는 일. 오늘의 일을 내일의 나에게 미뤄둔다지만, 그럼에도 미뤄둘 수 없는 일들도 있는 법이니까.

그렇지만 그게 온통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면서 나만의 세상에서 살던 나는 조금씩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산책이 알려준 풍요로움

하루하루 색을 달리하는 나뭇잎의 변화를 보았고, 사계절 바람의 냄새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식물도감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처럼 길가에 핀 꽃들의 소중한 이름도 알게 되었고 계절의 변화를 꽃과 풀의 등장과 소멸로 알아챌 수 있게 되기도 했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으며 한겨울 차가운 바람도 웃으며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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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내린 날의 산책 ⓒ 이정은

 
덕분에 길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 짧게나마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많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반려견들과 함께 하는 산책이 아니었다면 살아가면서 당장 내 앞에 펼쳐진 정면이 아닌 주위를 살피고 돌아볼 수 있었을까. 덕분에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괴로운 순간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은 더 풍요로워졌다.

언젠가 산책길에서 처음 뵌 분이, 강아지 실외 배변 때문에 하루에 여러 번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는 나와 내 곁에 있는 강아지를 번갈아 보면서 '아이고, 사람 귀찮게도 만드네. 갖다 버리지 이걸 어떻게 키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 순간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다시 마주쳐 같은 말을 듣는다면 그때는 꼭 묻고 싶다. 당신 또한 질병이 생기고, 집안의 물건을 망가뜨리게 되고, 다른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고 해서 가족에게 버려져도 괜찮느냐고 말이다.

이제는 곁에 두고 귀여워만 하는 '애완견'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며 정서적 교류를 나누는 '반려견', 다시 말해 새로운 의미의 가족으로 불리는 시대이다. 일상도, 휴가도, 그 어떤 생활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산책이란, 특히 배변이 기본값이 된 산책이란 가족에게 있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일 뿐이다.

요 며칠 계속되는 폭염으로 주의하라는 안전 문자가 계속해서 오고 있다. 이미 두 번의 산책을 다녀왔고, 아직 한 번이 더 남았지만 기꺼이 오늘의 퀘스트를 성공리에 끝내야지. 아직 오늘의 '퀘스트'를 마치지 못한 반려인들의 산책이 비록 덥고 힘들다해도, 그 이상으로 즐겁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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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새로운 의미의 가족. (출처 Unsplash) ⓒ sarandywestfall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반려견 #실외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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