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곰이다. 또 다른 침입자, 북극곰도 끼워달라고 한다.
그림책향
요즘처럼 편 가르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아니 다르면 좀 어떠냐고, 그래도 같이 살자고 손 내미는 책이다. 더 큰 위험이 닥쳐올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자고 말이다. 작가는 말한다.
"이 작고 여러 위험 가득한 지구라는 별에서 타인이 우리가 되는 것만큼 경이롭고 신나는 경험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서 당신과 같이 어울려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그림책의 글이 짧다고 내용이 풍성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어떤 그림책은 글보다 그림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이 그림책도 그렇다.
짝짝이발 펭귄을 침입자로 명명하고 따돌림을 주도하는 이는 바로 대장 펭귄이다. 무리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어 가장 먼저 낯선 이들을 발견하지만 좋은 우두머리 같지는 않다.
말로 명령할 줄만 알지 위기가 닥쳤을 때 제대로 대처하는 능력은 빵점이다. 상어에게 물고기를 모두 주고 배고픈 펭귄들이 열심히 물고기를 잡을 때, 얼음 배 위에서 혼자 물고기를 우적우적 먹는 것도 대장뿐이다. 대장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반면, 침입자로 지목된 짝짝이발 펭귄의 행동은 사뭇 다르다. 그는 상어를 물리치기 위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든다. 다시 평화가 찾아왔을 때, 얼음 배 가장 뒤에 앉아 노를 저으며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한다.
짝짝이발 펭귄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먼저 손을 내밀어준 몇몇 펭귄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장 펭귄이 '침입자'라 했음에도 이름을 물어봐주고, 인사를 하며 먼저 다가가는 펭귄들.
그중에서도 꼬마 펭귄 하나가 눈에 띄는데 짝짝이발 펭귄이 배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손을 내밀어 구해주는 이가 바로 이 꼬마 펭귄이다. 그 이후로 짝짝이발 펭귄은 날아가는 꼬마 펭귄을 잡아주고,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주면서 계속 꼬마 펭귄을 도와준다.
인간이 다투는 동안 망가지는 지구
한 권의 그림책은 여러 시각에서 해석될 수 있는데, 이 그림책 역시 마찬가지다. 차별이나 배제, 공동체 같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주제는 물론,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다.
내가 이 그림책을 고른 건 바로 첫 장면 때문이었다. 얼음 조각에 타고 있는 짝짝이발 펭귄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얼음 조각은 금방이라도 녹아 없어질 것처럼 작았다. 북극곰이 서 있는 얼음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였다. 펭귄에게도 북극곰에게도 작은 얼음덩어리 밖에 내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