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째 장기집권한 캄보디아 훈센총리의 연설 모습. 그는 지난 2021년 말 큰 아들 훈 마넷을 총리 후게자로 공식 지명한 바 있다. 그는 퇴임후에도 당대표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섭정 정치를 펼 것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박정연
아시아 최장기 독재자로 38년간이나 집권한 훈센총리가 그의 장남에 권력을 승계함에 따라 캄보디아는 북한과 같은 세습독재국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크메르타임스>를 비롯한 현지 주요언론들은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이 지난 7일(현지시간) 훈센 총리의 요청에 따라 훈 마넷 캄보디아군 부사령관 겸 육군대장을 신임 총리로 지명하는 왕명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장남 훈 마넷은 새 의회가 구성되는 오는 21일 비준을 받은 뒤 다음날 캄보디아 총리로 공식 취임하게 된다.
훈센 총리와 분 라니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3남 2녀 자녀 가운데 맏아들인 훈 마넷은 이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총리로서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게 된 것은 최고의 영광"이라며 시하모니 국왕에게 감사를 표하고 "국민들의 생활 소득 수준과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집권당인 인민당(CPP)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이기도 한 훈 마넷은 지난달 23일 치러진 제7대 총선에 출마해 수도 프놈펜 선거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참고로 캄보디아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비례선거제도를 채택, 개인의 인지도나 대중지지도보다는 당에서 정해준 공천 순번이 당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기자 말).
훈센 총리는 지난 2021년 말 총리 자리에 욕심을 내비친 막내 아들 훈 마니 대신 큰 아들인 훈 마넷에게 권력을 주기로 최종 결심한 바 있다. 집권당인 인민당도 만장일치로 훈 마넷을 차기 총리 후계자로 공식 선언했다.
훈센 총리는 그동안 아들의 정치 앞날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와 반대파 세력들을 차례대로 숙청해왔다. 총리의 강력한 라이벌인 삼 랭시 전 캄보디아구국당 (CNRP) 총재에게는 선거 개입혐의 등을 씌운 뒤 궐석재판을 통해 25년간 선거 출마를 금지시켜 버렸다. 삼 랭시는 내란음모죄와 명예훼손, 부패 등 여러 가지로 혐의로 얽매어진 상태이며, 구속을 피해 현재 프랑스와 미국 등지에서 기약없는 망명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또 다른 야당 지도자이자 구국당을 함께 만든 주역인 켐 소카 역시 국가 내란죄 등 혐의로 27년형을 선고 받고 현재 가택연금중이다. 그외에도 훈센 총리는 자신을 반대하는 망명 정치인과 활동가 16명에 대해서도 20년간 출마·참정권을 제한했다.
노련한 정치 9단답게 훈센 총리는 일부 야당인사들을 회유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기존 야당세력들을 와해시키기도 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상당수 야당인사들을 상대로 협박과 회유를 해 전향시키려 했다. 그 결과 일부 야당인사들은 결국 현 정권에 굴복하거나 백기 투항했다.
훈센 총리는 앞선 2013년 총선에서 야당바람을 일으키며, 44% 지지표속에 55석을 차지했던 캄보디아구국당(CNRP)을 대법원 판결을 통해 2017년 반역죄로 강제 해산시킨 뒤 이듬해 총선에서 전 의석(125석)을 싹쓸이 하며 일당독재 체제를 확실히 굳혔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NEC)는 집권당의 하수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선관위는 현재주요 야당이자 삼랭시 전 야당총재의 지지 세력으로 구성된 촛불당(CP)이 당 등록 서류 원본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총선 참여를 금지시켜 버렸다. 앞서 치러진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는 등록 서류 제출 문제를 지적조차 않던 선관위가 갑자기 원본 서류누락을 이유로 총선 참여를 거부했다고 야당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명야당이 총선에 불참하는 바람에 지난 7월 치러진 총선 역시 하나마나한 선거라는 비판 여론이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들끓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자유민주주의진영 국가들은 이번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한 환경에서 치러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선거 참관인 파견마저 거부해버렸다. 이번 총선 선거참관인단은 중국과 러시아 및 아프리카 기니비사우에서만 왔다(참고로, 금년 2월 발표된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민주주의지수에서 캄보디아는 선거 절차와 다원주의 부문에서 북한과 함께 0점을 받았다).
이번 2023 총선에선 집권여당인 인민당이 5년 전 선거 때처럼 125개 전 의석을 독차지하지 못했다. 대신, 군소 야당에게 일부 의석을 내줌으로서 나름 외형상 '다당제민주주의국가'라는 모양새만 간신히 갖추게 되었다. 그나마 5석을 획득한 정당인 푼신펙(FUNCINPEC)은 수권능력을 가진 진정한 야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라나리드 왕자(2021년 사망)의 큰 아들인 노로돔 차크라붓 왕자가 이어받은 당으로 사실상 친정부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뒤를 이를 새 지도자 훈 마넷은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