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가사를 쉽게 소개하고 창작한 권숙희 작가의 책권숙희 낭송가는 2019년에 내방가사를 쉽게 소개한 『내방가사 이야기』를, 2022년에는 창작가사집 『꽃달임』을 출간했다.
김슬옹
- 주로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풀이되어 전해오는 대표적인 작품을 읽으며 내용을 익히고 새로 발굴된 가사를 현대어로 풀이하면서 내용을 완전히 익힌 뒤 낭송을 해 봅니다. 또한 내방가사 운율을 활용한 현대 가사를 창작도 하고 발표도 합니다. 지금도 3년째 월간 국보 문학에 현대 가사 연재 중입니다.
2019년 영남내방가사연구회를 설립하여 연세 많으신 기존 내방가사 동호인의 교류를 활발히 하고 현재는 수성구립용학도서관에서 초보자들에게 내방가사를 교육하는 동아리를 운영 중입니다.
봄마다 화전놀이를 개최하거나 참여하여 영남지역의 특수한 전통인 화전가가 있는 화전놀이의 전통을 알리고 있습니다. 강의나 공연을 통해 대중에게 내방가사를 알리는 게 중요하죠. 제가 조금 먼저 시작해서 조금 더 공부한 만큼 내방가사를 공부하려는 초보자에게는 아낌없이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내방가사를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권 낭송가도 오래전부터 하시던 분들의 낭송을 듣고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공부했다고 한다.
안동에는 오래전부터 내방가사를 하시는 분들이 모여서 내방가사 전승보존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시간과 거리 등의 여건상 함께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다만 2014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는 내방가사경창대회에는 꼭 참석한다고 한다.
내방가사에 대한 자료는 예상보다 풍부하고 아직은 궁금한 부분을 이야기해 주실 분들이 계시고 미리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저술하신 분들도 계셔서 혼자 공부하기에도 큰 어려움은 없단다. 이론을 갖추고 내방가사를 창작, 낭송, 풀이하는 것이 이제 생활의 전부가 되었다고 한다.
- 내방가사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결혼과 자녀 양육으로 인해 자신을 돌보거나 취미활동을 할 기회가 없었지요. 내방가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나도 이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생기고 자존감도 생겼습니다.
백 년 전에 쓴 가사를 풀이하다 특별한 구절을 만날 때면 그 당시 글쓴이를 만나서 대화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요. 가사를 읽고 쓰는 일은 '나'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고 가슴 속에 답답하게 얹혀있던 불덩어리가 가사를 읽고 쓰면서 나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내방가사는 최고의 치유문학으로 오래전부터 우리 할머니들이 활용했다는 사실을 어디에서나 이야기합니다.
내방가사를 공부하면서 독립운동사와 여성사, 그리고 훈민정음과 한글에 대해 공부한 것도 저로서는 큰 수확입니다. 현재 대구교육대학교에서 문예 창작, 스토리텔링 석사과정을 공부하게 된 것도 내방가사 덕이죠. 내방가사가 품은 무한한 이야기를 또 다른 형태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꿈입니다."
권 작가의 저서에 의하면 내방가사는 여성의 손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한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사소하고 섬세한 여성의 마음을 기록하는 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글로 기록한 내방가사는 한글 변천사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영남지역의 방언이나 고어를 연구하는 데도 훌륭한 자료가 된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만주 망명 가사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엿볼 수 있고, 이름 없는 수많은 여성이 쓴 내방가사는 민속학적으로도 훌륭한 자료가 된다. 이런 가치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내방가사를 잘 모르는 이유가 궁금했다.
- 요즘 사람들이 내방가사를 잘 모르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내방가사는 원래 영남지역에만 있었던 문화이기 때문에 지역적인 한계가 있어요. 여성이 학교 교육을 받게 되면서 세상이 요구하는 여성상도 변했고 여성 스스로도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고요. 구차하게 두루마리에 쓴 묵은 교육철학은 저절로 밀려나게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요즘도 할머니들이 모인 경로당에서 내방가사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십중팔구 시집살이하던 세월의 지긋지긋한 이야기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며 자리를 피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내방가사는 퇴계 학통을 이어받아 학문을 중시하던 영남지역에서 주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반가의 여성들이 즐겼다. 여성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마땅찮게 생각하던 시대라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주로 한글 궁체 가는 붓글씨로 한지 두루마리에 썼다. 여성의 학교 교육이 시작된 이후 내방가사는 급격히 쇠퇴하였으나 아직도 소수의 인원이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2022년 11월에 내방가사는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 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여성 집단 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은 내방가사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신호이다.
2022년 국립한글박물관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8개월에 걸쳐 내방가사를 전시했다. 이는 내방가사가 생기고 처음으로 받는 관심과 대접이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한문이 대접받는 시대를 거치며 내방가사는 늘 그 가치에 비해 저평가되어 왔다.
전통 내방가사를 짓고 읽는 분들은 극소수이다. 그나마 연로하여 해마다 돌아가시거나 병으로 인해 자유로운 출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세월이 가면 배우려고 해도 가르쳐 줄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권 낭송가는 내방가사 활동을 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를 통해 내방가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사람을 만났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SNS로 활동하기 좋은 시대라서 좋고요. 원래 기계치였지만 공부와 홍보를 하려니 컴퓨터도 최소한은 배워야 했고 휴대폰을 쓰는 시간도 남보다 많은 편입니다.(하하) 저는 그저 내방가사를 즐기는 한 사람일 뿐이지만 우리 할머니들이 즐기던 사랑과 배려의 정신이 담긴 내방가사를 전승하고 후대에 남겨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학교에서도 내방가사를 교육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의 정서를 가사 운율에 얹어 쓰면 현대 가사가 됩니다. 가사 문학이 오래전에 박제된 과거형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소중한 문학 장르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한류의 근간이 되는 것은 한글인데 그 중심에 한글 내방가사가 놓여야 합니다. 글 모르는 사람을 배려한 나눔의 정신이 깃든 문학이니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정신이 가장 잘 담겨 있는 문학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