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시민운동은 참 대단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참여사회
첫째, 대중운동을 지향하는가?
사회운동 연구자들은 시민운동을 비롯한 모든 사회운동을 '또 다른 방식의 정치(politics by another means)'로 이해한다. 정책결정 권한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개혁이나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 정책결정자들을 움직일 만한 사회적 압력을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적 힘을 키우는 것은 모든 사회운동의 근간이며, 이 사회적 힘은 조직된 대중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모든 사회운동은 대중과 만나 조직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삼는다.
그러나 이미 꽉 짜인 관료적 일상 업무를 소화하기에도 벅찬 단체 활동가들이 대중을 조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어 보인다. 물론 활동가가 꼭 단체 상근자 혹은 반(半)상근자만 의미하는 건 아니기에 자원 활동가가 함께 대중운동을 펼쳐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광고만 낸다고 해서 꾸준히 일할 자원 활동가가 제대로 조직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현장을 뛰면서 사람들을 만나야 가능한 건데, 격무에 시달리는 상근 활동가들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대중이 아니라 자꾸만 언론이나 정치권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단체 활동이 고착된다. 대중적 조직 기반이 없으니 협상력은 떨어지고, 할 수 있는 일에만 치중하게 된다. 작은 변화를 이루면서 효능감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세상이 달라지는 느낌이 없다 보니 무력감을 느끼는 활동가는 늘어간다. '소외된 자, 억압받는 자'와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둘째, 얼마나 독립적인가?
90년대를 주도한 시민단체들은 '권력에 대한 날선 감시와 비판'을 주된 임무로 삼았고,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유무형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정치적·경제적으로 독립적이어야 권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로 접어들며 이런 모습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 급격히 늘어난 거버넌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거버넌스는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반영한 측면도 있고, 참여의 통로를 다변화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 담론에서 거버넌스를 '수평적인 참여와 협력, 소통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 메커니즘'이라 치켜세우는 것과는 달리 정책학에서는 거버넌스를 '보다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 통제와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파악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거버넌스 역시 개혁 정책이 가로막히고 여론이 악화하며 정치력이 제약된 조건에서 등장했다. 즉, 정부가 시민사회와 파트너십을 제도화해서 정책 성과를 내고자 추진된 것이다. 시민사회는 호응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나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과의 친밀성을 강화했다. 이후 많은 활동가가 정부 혹은 정부와 협치하는 기관에 흡수되었고, 더 많은 활동가가 정부·지자체의 지원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거버넌스가 구축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수평적 관계를 강조해도 거버넌스는 기본적으로 권력의 비대칭성 위에서 이뤄질 뿐이다.
시민사회는 '정부와 자본으로부터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결사체의 영역'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주요 시민단체들이 특정 정치세력과 촘촘한 사회관계망으로 연결되고 경제적 이해까지 맞물리게 되었다. 자율성과 독립성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정치가 양극화된 현실에서 단체가 아무리 '정치적 독립'을 외친다 해도 사람들에게는 양당 체제의 어느 한 편과 동일시되고, 자율성과 독립성에 타격을 입어 사회적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버넌스를 거부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거버넌스는 운동의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배체제를 구성하는 정치 세력의 영향과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하고 밀어붙일 수 있는 사회적 힘이 필요하다. 그러한 힘은 조직된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다.
셋째, 운동의 연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가?
역사적으로 한국 시민사회의 힘은 연대로부터 나왔다. 90년대 시민사회가 분화되었는데, 당시 이를 놓고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다양한 전선을 만들어서 사회운동의 사회적 힘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분화된 운동 간에 끈끈한 연대가 있으리라는 낙관에서 비롯된 기대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의제와 전선은 늘었지만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몇몇 시민단체가 칸막이 안에 고립되어 각자도생하는 형국이다. 이런 현실은 시민단체 간 혹은 운동 간에서만 관찰되지 않는다. 여러 의제를 다루는 큰 시민단체 역시 개별 의제들은 각각의 조직의 칸막이 안에서 다뤄지고, 단일한 의제를 다루는 소규모 단체라도 그 의제가 다시 세분화되어 칸막이 안에 갇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칸막이를 넘는 연대와 더 큰 운동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사회를 크게 조망하며 운동 과제를 뽑아내는 일은 점점 힘들어져만 간다. 정세분석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고, 단체 활동가들은 눈앞의 과제에 몰두하면서 운동가가 아닌 전문가가 되어간다. 권력자들은 통일된 전략을 가지고 지배체제를 굳히는데, 감시와 비판, 저항과 변화를 외치는 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원심력을 잡아줄 구심력이 없으면 변화를 꿈꾸는 사회운동은 힘을 잃는다. 세상은 지배체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
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답은 진단 속에 이미 담겨 있다.
1) 1991년 4월 말 명지대생 강경대에 대한 경찰의 쇠파이프 살인 이후 5월 내내 당시 노태우 정부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저항이 이어졌는데, '제2의 6월 항쟁'이라 불리울 정도로 규모가 크고 10명이 넘게 분신을 할 정도로 격했다.
2)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3명의 거물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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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시민사회운동, 칸막이를 넘어 세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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