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충북 옥천군 옥천읍과 이원면을 잇는 4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포도 팝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간판과 좌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월간 옥이네
무더운 여름, 충북 옥천군 옥천읍과 이원면을 잇는 4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포도 팝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간판과 좌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년 중 대부분 꽁꽁 싸매어 있다 7월부터 9월까지만 열리는 이 좌판은 농가가 직접 포도를 판매하는 곳이다.
많은 포도 농가가 최근 대세 작목인 샤인머스캣으로 전환하면서 4번국도 포도 간판이 열리는 시기도 7월 말에서 8월로 늦어졌다지만 직접 키운 포도를 파는 농부의 마음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 터. 올해 가장 빨리 좌판의 문을 연 동이면 석화리로 찾아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더러워서! 내가 직접 팔지!
동이면 석화리에 사는 임일재씨는 포도와 복숭아를 주로 농사짓는다. 그의 좌판은 다른 집보다 여는 시기가 이른데 샤인머스캣으로 품종을 바꾼 다른 농가들과는 다르게 아직도 거봉과 캠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조금 이르게 복숭아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연이은 폭우로 노지 복숭아가 큰 타격을 받아 평소보다 이르게 수확한 것이다. 상태가 좋고 맛을 보장할 수 있는 것만 가져와 상자에 담았다고.
"요즘은 이 근처에서 캠벨을 찾으려고 하면 별로 없어. 우리도 엄청 많진 않아, 일부를 샤인으로 바꿨거든. 작년에 포도 복숭아 축제 때 참여한 캠벨 농가가 대여섯 집밖에 안 됐는데 우리가 그중 하나였어. 샤인은 수확 시기가 늦으니까 그땐 참여를 못 하지. 그래서 재미 좀 봤어. 요즘 캠벨은 없어서 못 파는 경우가 많아."
그는 마을에서 제일 일찍 4번 국도변 좌판 장사를 시작한 사람이다. 28번의 무더운 여름과 장마를 겪어 냈으니 그 세월이 무상하다.
"37살이었나, 그땐 온 마을이 다 공판장으로 납품했단 말이여? 10kg짜리 스티로폼 상자에 납품했는데, 상자당 7만 원 줄 테니까 가져오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돈을 바로 안 주는 거야. 두 번째도 안 주고, 세 번째가 되니까 그제야 돈을 주는데 박스당 5만 원에 주더라고."
젊은 혈기에 폭발한 그는 돈이 든 봉투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상회와 실랑이를 벌였다.
"아저씨! 우리 동네 포도가 다 이리 오는데 내가 도시락 싸서 어른들 다 여기 못 오게 할 거요!"
하지만 별 소용 없었다. 당시엔 작목반 회장이 마을 공동의 이익을 위해 싸우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함을 감추기 어려웠다고.
"마을의 이익을 위해 대표로 상회랑 얘기해야 하는데 안 하시더라고. 수확철이 되면 상회에서 얼마만큼 가져오라고 전화가 오거든? 그럼 항상 주문량보다 많이 가져가자고 하는 거야. 그럼 당연히 상자당 가격을 덜 받지. 어렸을 때 농사짓기 전엔 옥천에서 택시를 몰아서 마을 어르신들보다 정보가 빨랐거든. 그래서 막 따졌는데 어떻게 안 되더라, 어려서 힘이 없었던 거야."
반감과 혈기로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파란 천막을 샀는데, 그것이 4번 국도변 포도좌판의 시작이다. 동이농공단지 진입로에 천막을 치고 포도를 내놨는데 귀신같이 다 팔리는 게 아닌가? 그는 그때 무릎을 '탁' 쳤다고 한다. "아, 그냥 여기서 이렇게 팔면 되겠구나! 뭐 하러 상회 눈치를 봐야 하나?"
그날 따서 그날 판매... 샤인 유행 속 여전한 캠벨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