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이탈리아 역사 철학자 크로체(Benedetto Croce)가 한 말이다. 역사는 항상 현재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다시 기술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도 이러한 크로체의 생각에 충실해야 한다고 여겼을까? 단순히 육사 교정을 정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역사를 다시 쓰기로 결심한 듯하니 말이다. 이제 '반공전체주의' 세력에 맞서는 굳건한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 구축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쳐내고 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 전반을 재조직하고 재정비하겠다고 나설 판이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새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야지, 역사적 사실도 무시하고 심지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 '역사 쿠데타'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해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싸운다는 이념 방침이 중요해도, 항일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를 정당화하려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행태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 행위다.
홍범도 부대를 비롯한 우리 독립군 부대가 러시아령을 넘던 1920년 말~1921년 초의 상황은 참혹했다. 일본군의 공격을 피해 러시아령으로 넘어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독립군의 통합과 재편성을 전망하면서 일시적 무장 해제를 수용한 일은 결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무장해제 요구를 거부하고 만주로 되돌아간 김좌진 부대가 부딪힌 현실은 중국군에 무장해제 당하거나 스스로 해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그렇다고 항일독립군이 일본군과 손잡고 적군(붉은군대)과 싸우던 백군(왕당파)에 합류하는 자기모순적인 행동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피압박 민족의 해방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실천한 레닌과 손잡은 홍범도 장군과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선택은 정당했다. 이후 부하들의 정착과 노년의 삶을 생각하며 나이 60인 1927년에야 소련공산당 당원이 된 홍범도 장군의 불가피한 선택에 대해 '당신이 가입한 소련공산당은 20여 년 후에 벌어진 6.25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을 지원한 그 소련공산당이었으니 잘못된 선택이었어!'라고 비난하는 짓만큼 몰역사적인 관점도 없다.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불행한 사건이었던 1921년의 '자유시 참변'에 직접 관여한 사실이 없음에도 마치 홍범도 장군이 직접 관여한 듯이 역사를 뒤틀어 왜곡하고,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하던 중 레닌과 회견하고 받은 권총을 자유시 참변에 개입한 대가로 받은 선물이라고 날조한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비난 논리라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손잡고 일제에 맞서 싸운 미국과 영국, 장개석의 중국도 결국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되고 말 것이다.
이쯤에서 일제가 소련의 위협을 강조하는 현실에 편승해 '소련의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일제의 식민지로 있는 게 더 낫다'는 해괴한 논리를 일기에 남긴 친일반민족행위자 윤치호의 파렴치한 작태를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윤치호는 영국과 미국을 '귀축영미(鬼畜英美)'라 비난하며 일제의 아시아-태평양 침략전쟁을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전쟁에 몰아넣는 캠페인에 앞장서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윤치호는 묻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홍범도 장군이 아니라면 누가 육사생도 롤모델 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