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현충원에서 최초로 1평 묘역에 안장된 최홍선 장군(공준 준장)의 묘(제7묘역 708-70212). 그 옆으로 육군 일병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임재근
묘뿐만 아니라 비석 등 부속구조물에도 자세히 보면 차이를 뒀습니다. 80평의 국가원수 묘는 원형의 봉분에, 묘 두름돌을 돌릴 수 있습니다. 묘비뿐 아니라 상석과 향로대, 별도의 추모비도 세울 수 있죠. 최규하 대통령의 묘비의 높이는 2.7m입니다.
8평 규모의 묘는 비석의 높이만 91㎝이고, 좌대까지 포함하면 186㎝에 이릅니다. 받침대의 길이는 106㎝입니다. 1평 규모의 묘역에 묘비는 76㎝의 비석 아래 15㎝ 높이로, 55㎝ × 72㎝ 크기로 상석을 받칩니다.
국가원수묘 묘비는 앞면에 '제○대 대통령 ○○○의 묘'라 적고, 뒷면에는 묘비 번호 없이 안장자의 출생일·출생지, 사망일·사망지 및 사망구분을 새깁니다. 왼쪽에는 안장자의 가족사항을 새기며, 오른쪽에는 안장자의 주요 공적 및 경력을 새깁니다. 묘비 상부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무늬를 화강석으로 조각합니다.
나머지 묘역의 비석 앞면에는 안장자의 신분(계급)과 성명을 새기고, 배우자의 성명을 안장자의 비문 왼쪽에 '배위 ○○○' 또는 '부군 ○○○'라고 새깁니다. '배위(配位)'는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고, '부군(夫君)'은 남편을 높여 이르는 말입니다. 뒷면에는 묘지번호, 안장자의 출생일·출생지, 사망일·사망지 및 사망원인을 새기고, 배우자의 성명을 안장자의 비문 왼쪽에 한 줄로 배우자의 출생일 및 사망일을 새깁니다.
조문기는 '애국지사'인데 김용원은 '순국선열'인 이유
8평 규모 묘역의 묘비 대좌대 앞면에는 추모의 글을 새기고, 뒷면에는 안장자의 공적사항과 수훈내용 및 가족사항을 새깁니다. 1평 규모 묘역의 묘비에서는 왼쪽 옆면에 안장자의 가족사항을 새기고, 오른쪽 옆면에는 안장자의 공적사항을 새깁니다.
8평 규모의 묘역의 묘비 아래 대좌대 앞면에 새기는 추모의 글은 고인의 말이나, 후손들의 글 또는 책에서 인용한 문구 등 자유롭게 적을 수 있습니다. 비석 전면에 새기는 안장자의 신분(계급)과 성명 글씨체(서체)는 통상 유족 의견을 따라 선택됩니다.
2021년 8월 카자흐스탄에서 국내로 송환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홍범도 장군(독립유공자 제3묘역 917)의 묘비에 쓰인 글씨체는 신영복 선생의 글씨체인 일명 '어깨동무체'입니다. 생존 유족이 없었던 홍범도 장군의 경우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요청에 따라 해당 서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일어난 최후의 의열투쟁으로 불리는 '부민관 폭탄의거'의 주역 중 한 명인 조문기(독립유공자 제3묘역 705) 선생의 묘비를 한번 볼까요? 앞면에 새겨진 글은 신영복 선생이 직접 쓴 글씨입니다. 비석 앞면의 '애국지사 조문기의 묘' '배위 장영심'이란 글씨뿐 아니라, 대좌대 앞면에 다음과 같이 조문기 선생의 어록을 새겨넣었습니다. 이것 역시 신영복 선생이 직접 썼습니다.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 통일을 위해 목숨 걸지 못한 것이 첫 번째요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런데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세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