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신간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유시민의 신간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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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이 감히 과학을?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문과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과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 31p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이 책은 과학교양서가 아니다. 평생 인문학을 연구한 문과생의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잡담'에 가깝다. 목차는 인문학과 과학,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으로 나누어졌지만, 여타 과학교양서처럼 과학이론을 설명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뇌과학을 설명하다 맹자의 '4단론'이 나오기도 하고, 생물학을 이야기하다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인문학을 기대했든 과학을 기대했든 독자들이 꽤나 당황할 법한 구성이다.
저자의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문과생과 이과생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우리는 보통 인문학과 과학을 반대편에 서 있는 학문이라고 말하며, 각자 다른 길을 걷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인문학과 과학은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그 인과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가령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문학의 표준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선 과학적으로 '인간'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저자는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고 말하며 '인문학은 과학의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p.47)고 주장한다.
이는 수십 년간 인문학을 공부한 저자의 배경을 살펴보았을 때 꽤나 충격적인 발언이다. 일반적인 인문학자라면 미국의 물리학자 '파인만'이 인문학자들을 "거만한 바보"라고 부를 때 콧방귀를 뀌거나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문학이 과학보다 선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용적인 자세로 과학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문외한 과학을 차근차근 배워나가며 그 안에서 또 다른 인문학적 의미를 찾아낸 것이다.
확신할 순 없었지만 희미하게 들었던 생각인 '과학과 인문학은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증명해 냈다.
"한계를 넓히려면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가치를 키우려면 사실의 토대 위에서 과학이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 더 그럴법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면 과학과 인문학을 다 공부해야 한다." p.292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참담했던 시험 이후, 문과생으로서 꾸준한 편식 공부를 해왔다.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인문학에 관련된 도서가 아니라면 펼쳐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과학 도서는 재미없고, 유익하지 않다고 감히 생각했던 적도 많다.
하지만, 저자가 경험했던 것과 같이 나 역시 인문학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어떠한 감정을 느꼈다. 평소에는 쳐다도 보지 않았을 서점의 과학코너에 간 것도, 이 책을 직접 구매해 읽은 것도 아마 그러한 감정 때문일 것이다.
인문학과 과학은 분명히 다른 학문이다. 인문학자들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에 죽도록 열광하며, 어떻게든 정답에 가까운 가설을 만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과학은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한다. 과학은 사실과 거짓이 분명하며, 애매한 정답은 정답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문과생이든 이과생이든, 인문학자든 과학자든 결국 우리는 단 하나의 질문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의 부제인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이 더 이상 인문학적 물음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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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8등급 문과 남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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