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언제 '정치 1등' 국가가 될 수 있을까

[리뷰] 김종인 지음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

등록 2023.09.10 11:50수정 2023.09.1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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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놈은 사흘마다 한 번씩 패야 한다'라는 말을 삼 일마다 한 번씩 듣고 자란 세대다. 한반도는 잡아먹기 좋은 토끼 모양처럼 생겼고 열등한 우리 민족은 저 위대한 일본인, 유대인을 배우고 본받아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한참 감수성 예민한 시절 어른들로부터 열등감을 주입받은 우리 세대의 트라우마는 깊고 강렬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뉴스가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제 겨우 국뽕 채널을 즐기면서 우리나라도 좋은 나라라고 정신 승리하는 나로서는 다른 나라를 배우자고 주장하는 논객이나 책은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그런 소리라면 우린 정말 지겹도록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성장하면서 어린 시절 어른들이 그토록 찬사를 한 일본이나 이스라엘이 그리 본받아야 할 놈들이 아니며 그들이 사는 나라가 이상향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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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의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 표지 ⓒ 오늘산책

 
이런 이유로 김종인 선생의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을 그리 호감 있는 태도로 펼친 것은 아니다. 독일이 잘 난 것은 알겠는데 뭐 어쩌라는 것인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독일식이라고 뭐든 다 좋겠는가는 반발심도 든다. 그러나 운동이라면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멸치가 핵 주먹 마이크 타이슨을 링 안에서 만나게 되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나더라.


이 책의 첫 문장 '독일의 역사를 어디서부터 소개해야 할까'를 읽자마자 호기심을 자극하며 친근하고 쉬우며 명쾌한 글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면 80대 중반에 40대 중반이 쓴 것 같은 젊은 감각이 느껴지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책이 주장하는 바에 공감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은 쉽고 재미나며 명쾌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이 가득하다. 저자 김종인 선생을 TV로만 가끔 보았지만, 그는 분명 자신만의 세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끊임없이 세대를 불문한 다양한 사람과 소통을 해왔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 정치를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유감스럽게도 정치권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짓말을 잘하고 가장 위선적이며 가장 뻔뻔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도 정치권이다.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는 우리나라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을 옹호하기 위해서 쓴 책이 아니다. 나처럼 우리나라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정치가 이 모양이 된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더 이상 한두 사람의 정치가에게 휘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보수는 어떤가. 한마디로 '반공 보수'다. 급진적 변화에 반대하는 차원에서 생겨난 방어적 보수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죽인 동족상잔의 결과로 생겨난 '적대적 보수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진보 정당 사람들을 만나보면 '국회의원 배지 몇 개에만 만족하면서 만년 야당으로 살고 싶은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과거를 명함으로 내밀면서 오늘도 투사로 살아가는 것에만 만족하는 '정신 승리' 정당이 되었다.
 
이보다 어떻게 더 정확하게 우리나라 정치 지형을 설명할 수 있을까.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는 정치 선진국 독일에서 정치 기술을 배우자는 책도 아니다. 적어도 내가 읽기로는 그렇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민의가 반영된 '정치 제도'가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자는 설득의 책이다.
 
독일에서는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다. 오로지 '정책'이 있을 따름이다. 각각의 사회적 과제를 놓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우선순위를 고민하고 미래를 논증할 따름이지, 특정한 잣대에 따라 '보수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진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 같은 도그마가 없다.
 
정확하게 우리나라 정치 상황과 반대다. 대통령 한 사람과 한 정당이 모든 장관을 임명하고 전 정권의 제도를 순식간에 폐기하는 나라가 어떻게 왕조 국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종인 선생은 독일 정치 제도를 답습하거나 모방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정책으로 이끌어가는 정치, 승자 독식보다는 단 1%의 민의라도 꼼꼼하게 반영하는 정치, 적대적 투쟁보다는 인내심과 타협으로 이끌어가는 정치를 시종일관 말한다.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한 내각제 제도에 대한 논의는 이 책을 새로 읽어나갈 독자를 위해서 따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내각제 제도 자체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노회한 정치인이 천년만년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미리 알려두고 싶다.

나는 이 책이 좀 더 많은 독자 그리고 좀 더 어린 독자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영논리에 전혀 치우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관해서 이 책만큼 정확하고 쉽게 제시한 책을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 - 전범국가에서 모범국가로

김종인 (지은이),
오늘산책, 2023


#김종인 #오늘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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