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이효석 문학상 시상식작품 <애도의 방식>으로 대상을 수상한 안보윤 작가의 수상 소감
박병춘
- 우선 제24회 이효석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수상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자음과 모음, 낱자를 더듬어 붙이던 어린 시절처럼 저는 여전히 글자들을 골라내고 있습니다. 활자를 조판하듯 백지 위에 하나하나 조심스레 올립니다. 어떤 글자들은 몰래 손바닥에 써서 삼켜버리기도 하고, 어떤 글자들은 담벼락에 휘갈긴 뒤 도망치기도 합니다. 누군가 읽어버릴까 봐, 혹은 아무도 읽지 않을까 봐 늘 두려워하면서요.
수상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그 글자들의 무게를 떠올렸습니다. 정확히는 글자들을 조합해 만들어 낸 소설 속 세계의 무게에 대해서입니다.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쌓아 올린 이 세계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고민해 보겠습니다. 제게는 더없이 달고도 무거운 상입니다."
- 작가가 되는 동안 글쓰기에 영향을 준 스승이 있을까요?
"이번 수상작품집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요. 중학교 때 의외의 방학 과제를 받은 일이 있어요. '단편 소설 창작해 제출하기' 중학생들에게는 생소한 과제를 당시 국어 선생님이 내주셨습니다. 그게 얼떨결에 창작하게 된 제 첫 소설이었어요. 당연히 유치하고 어설펐는데, 선생님은 그걸 꽤 많이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제게는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었어요. 글을 쓰는 것도, 누군가 그걸 읽고 반응해 주는 것도 제게는 모두 생경하고 즐거운 일이었어요. 글 쓰는 일이 즐겁다는 걸 알게 된 시작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문학의 궁극적 목표를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어떤 거창한 목표가 있고, 그것에 반드시 부응하는 글쓰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저는 다만 현실과 가까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의문이 드는 것들에 대해 마음껏 의심하고 좋은 일들에 대해 마음껏 희열을 느끼는 것. 그런 삶의 태도를 소설 속에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제게 세상은 의문투성이라 지금의 글쓰기는 세계를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맞춰져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목소리를 내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인간들을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게 있어 문학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 현실에 다만 안주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갈 방향을 끝없이 모색하는 과정에 가까워요."
- 대상 수상작의 중심 내용 요약, 그리고 학교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선택한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 <애도의 방식>은 학교 폭력 피해자였던 '동주'가 가해자 '승규'가 돌연 사망한 뒤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동주가 승규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승규의 어머니는 끝없이 동주를 찾아와 진실을 말해달라고 괴롭혀요. 동주는 살인범으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이전의 피해 사실들까지 숨겨야 하는 현실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더 혼란스러운 건 자신의 마음이에요. 어느 순간 한번쯤은 승규가 죽기를 바랐던, 승규가 죽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던 자신의 일그러진 마음이 고통스럽게 동주를 옥죄고 있어요. 동주는 승규의 폭력과 죽음에 대해 침묵하고 싶기도, 무언가를 고발하고 싶기도 한 복잡한 마음속에 있습니다.
학교 폭력은 어느 한 시절에 머물러 있지 않아요. 그것은 한 사람의 신체와 영혼에 거대한 흉터와 일그러짐을 남기는 영구적인 폭력입니다.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성인이 된다고 해서 종결되는 것도,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다양한 시각에서 이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 제목을 '애도의 방식'이라고 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승규의 죽음에 대한 동주의 애도는 침묵의 형태로 그려집니다. 동주는 유족인 승규의 어머니에게 승규의 폭력성을 고발하지 않는 것으로 남겨진 세계를 지켜주고 싶어 해요. 자신이 당한 폭력을 고발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처럼 난데없는 고통 속에 남겨진 승규 어머니가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주기 위해서 끝까지 침묵합니다. 동주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남아 있는 누군가를 배려해 주는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너머의 세계>, 교사들의 선택은 왜 '방관'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