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에게는 한국 정부가 '악덕사업주'다

대한민국 이주노동의 오늘과 미래

등록 2023.09.13 15:53수정 2023.09.1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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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농어촌, 조선소, 택배 상하차, 이제는 가사도우미까지...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약 2808만 명 중 이주노동자는 공식 통계로는 84만 명, 미등록 이주노동자(소위 '불법체류자')까지 합하면 약 120만 명 정도(전체 취업자의 약 3~4%)다. 1) 그렇다면 오늘날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과연 어떤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실태  

이주노동자들의 가장 큰 목표는 '돈 많이 모아 건강하게 귀국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건강권마저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업무상 질병 사망자는 제외한 수치로 보임) 828명 가운데, 이주노동자는 102명(12.3%)으로 집계됐다. 10명 중 1명이 이주노동자인 셈이다.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사고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며, 노동자 1만 명당 사고 사망자 비율은 한국인 노동자보다 약 7배가량 높다고 한다. 2) 여기에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산재 사고 등을 감안하면, 실제 산재 사고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가 나도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고 사람들도 별로 관심이 없다. 올 6월 전남 신안의 한 새우 양식장에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가 일하다 물에 빠져 사망한 어이없는 사건이 있었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사업주 입장에서도 사망사고가 나도 홍역을 치를 일이 덜하기에, 위험한 현장일수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은 유인은 충분하다. 또한, 대부분 사업장에서 통역 없이 안전보건 교육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리 없다. 향후 중대재해처벌법이 전면 시행돼도, 농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은 상시 5인 미만인 경우가 적지 않아, 상당수의 농어업 이주노동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울타리 밖에 놓이게 된다.

농어업 이주노동자들의 고충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시간을 일하는 도시 이주노동자들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는다. 근로기준법 제63조 제1호(토지의 경작·개간, 식물의 식재(植栽)·재배·채취 사업, 그 밖의 농림 사업), 제2호(동물의 사육, 수산 동식물의 채취·포획·양식 사업, 그 밖의 축산, 양잠, 수산 사업)에 의해 그들은 주휴수당도 받을 수 없고 연장·휴일근로를 해도 가산 수당(50%)을 받을 수 없다. 주휴수당만 따져도 월 30만 원 이상이다. 농어업 일이 도시의 제조업보다 더 힘들면 힘들지, 편하지는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임금 차별은 농어촌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몰래 떠나 도시로 옮기는 유인이 된다.

또한, 농어업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 시 국가에서 일정액을 먼저 받는 대지급금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법인이 아니면서 상시 5명 미만의 노동자가 일하는 농어업 사업장은 이 제도의 적용대상이 아닌데, 적지 않은 농어업 사업장이 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한편, 농어업 사업장은 주로 인구가 적고 외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당 이주노동자들은 고립된 채 생활하게 되고 아파도 병원에 가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각종 폭력, 문화적 고립의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주노동자의 족쇄


고용허가제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고유한 문제로, 사업장 변경(이직)과 기숙사비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주로 동남아 지역 등 16개국에서 외국인력(E-9 비자)을 도입하는 일반 고용허가제의 경우 문제가 된다.


회사를 옮기고 싶어도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기에 사실상 강제노동이라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일정액 이상의 임금체불, 사용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부당한 처우(폭행, 폭언 등)가 있는 경우 등등 예외적으로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지만 법적 절차를 통해 이를 인정받기가, 특히 이주노동자 스스로 고용노동부의 인정을 받기가 상당히 어렵다. 

임금체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폭행·폭언 등은 대부분 수사기관의 수사결과가 필요한 데, 신고 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대개 수개월 정도 걸린다. 이주노동자는 신고 후에는 사업주와 갈등으로 일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소득 없이 수개월 생활고를 겪는다. 또, CCTV 등 증거가 없다면 원하는 결과를 받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한편, 산재를 당했어도 부상 또는 질병 정도가 3개월 미만인 경우에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 난 사고라도 부상 또는 질병 발생일로부터 1개월 내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다면 이주노동자는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다. 즉, 또 다시 산재를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있어도 3개월 미만의 부상이라면 회사를 떠날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2021년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규정이 사업장 변경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제한함으로써 고용허가제의 도입 취지를 달성하면서도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중대한 근로조건 위반과 부당한 처우를 억제하고 있어 이주노동자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모습과 괴리된, 무책임하고 현실을 도외시한 판단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사업장 변경의 또 다른 문제점은 사업장 변경 신청 후 3개월 내 취업절차를 완료하라고 하면서 고용노동부에 고용허가서 신청을 하는 주체를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주로 한 점이다. 이로 인해 사업주와 구두로 근로계약을 체결했음에도 사업주가 착오로 고용허가를 신청하지 않아, 3개월 내 취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출국위기에 놓인 한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광주·전남 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에서 기존의 인권위 사례를 들며, 이주노동자의 잘못이 없으니 구제해달라고 했지만 노동부는 요지부동이었다. 다행히 인권위 진정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었는데, 구제받기까지 해당 이주노동자는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반 년 넘게 소득 없이 지내야만 했다. 

기숙사비 문제도 심각하다. 통상 기숙사는 출퇴근이 쉽지 않은 노동자를 위한 편의시설이라, 무료이거나 약간의 비용만 받는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월 20만 원 이상씩 내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정한 숙소비 기준은 아파트, 단독 주택 등의 경우는 최대 월 통상임금의 15%, 그 밖의 임시 주거시설은 최대 월 통상임금의 8%까지 받을 수 있게 해놓았는데, 2023년 최저임금(월 201만 원) 기준으로는 각각 30만 원, 16만 원이다. 

허름한 시설에 냉난방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면서 단독주택이라는 이유로 월 20만 원 넘게 기숙사비를 받으며, 그것도 2인 1실을 쓰게 한 사업주도 있다. 정부는 상당히 높은 공제기준을 설정하고도 제대로 감독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하여,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사실상 숙박장사를 하게끔 부추기고 있다. 이외에도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언어장벽에서 비롯한 많은 어려움들을 겪고 있다. 노동청에서도, 병원에서도 통역은 충분하지 못하다. 전문성을 갖춘 통역들이 없지는 않지만, 통역 수요는 훨씬 많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저출생, 고령화와 맞물려 이주노동자들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의지만 있다면 상당 부분은 가까운 장래에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재의 경우, 안전교육은 산업인력공단이나 안전보건공단에서 통역인을 참여시켜 각 산업 분야별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이 있다.

언론은 이주노동자 산재사고를 더 많이 심층적으로 보도하고, 시민사회는 정부와 연계하여 이주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사업장을 방문하여 위험요소를 개선하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어업 이주노동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법을 전면 적용하는 방법도 있다. 또한, 농어업 이주노동자들의 임금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제63조 제1호, 제2호를 폐지하고 모든 사업장에 국가가 사업주 대신 대지급금을 우선 지급하도록 법을 개정할 수도 있다.

사업장 변경의 경우, 대다수 전문가들의 주장처럼 노동허가제를 전면 도입하는 방법이 있다. 동포(H-2 비자)들에게 인정되듯, 사업주 동의 없이도 자유로이 사업장 변경을 허가하자는 것이다. 노동허가제로의 전면 이행이 어렵다면, 과도기적으로 이주노동자가 1년 이상 근무하면 사업장 변경을 자유로이 허가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1년 이상이면 해당 사업장에 충분히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도 퇴직금을 받고자 최소한 1년 이상 일할 유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일정 기간 한국에 장기체류한 고용허가제의 이주노동자에게 거주나 영주권을 주는 것이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한 이주노동자를 진정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기숙사비 과다공제의 경우, 기숙사 제공의 본래 목적대로 정부 차원에서 현재보다 더 낮은 기숙사비 공제율을 책정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통역 문제의 경우, 기존에 정부가 운영하는 통역 서비스를 대폭 확충하는 게 필요하다. 이미 우리 사회에 많은 이주민들이 살고 있고 수년 이상 거주 중인 이주민들도 상당수다. 이들에게 전문교육을 하고 안정적인 통역 일자리를 제공하면 통역 문제를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 통역이 가능한 인력은 충분하다. 예산이 문제일 뿐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은 내국인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역시나 문제는 의지와 예산이다. 정부는 여전히 이주 노동자를 인력난 해소 수단으로 볼 뿐이다. 정부에게 이주노동자란,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임금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황금열쇠일 뿐이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은 언론에 기사화될 때에만 관심을 갖고, 그때마다 뭔가 개선책을 내놓지만 매우 미비하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한국 정부가 악덕사업주 중 악덕사업주이다.

1) KBS뉴스 2023. 6. 3.자 기사 인용
2) 뉴스핌 2023. 5. 19.자 기사 인용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춘호씨는 광주민중의집 운영위원, 변호사입니다.
#이주노동자 #노동자 #고용허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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