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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각오한 시절이었다... 92살,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

[골목길 TMI] 평화의 바다, 상륙의 땅... 인천상륙작전의 길을 걷다

등록 2023.09.25 18:14수정 2023.09.2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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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인후(咽喉) 인천. 몽골 침입부터 병인양요, 신미양요,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 등 크고 작은 전쟁의 무대는 항상 인천이었다. 분쟁과 평화의 바다, 상륙의 땅, 인천.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위기에 응전해 한반도를 지켜낸 인천은 오늘 300만 인천시민, 750만 재외동포와 함께 '1000만 인천 시대'를 맞이했다. 이제 인천에 붙은 '세계의 전장'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세계가 괄목상대하는 '평화와 화합의 도시'로 웅장하게 비상할 차례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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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선착장 근처에 세워진 그린비치 표지석 ⓒ 유승현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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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당시 유엔군이 상륙했던 월미도의 그린비치 ⓒ 유승현 포토그래퍼

  
1950년 9월 15일 오전 6시 33분. 미군 제7함대를 주축으로 한 261척의 함정과 유엔군 7만 5000여 명의 병력이 인천 월미도(그린비치)에 상륙했다. 미군 2개 사단(1해병사단·7사단)과 한국군 2개 연대(17연대·제1해병연대)가 작전에 참여했다.

성공 확률 5000분의 1, 인천항의 수로는 좁고 물살은 빨랐다. 10m에 달하는 조수간만의 차와 질퍽한 갯벌은 상륙작전을 펼치기엔 최악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태평양 지역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작전을 감행해 불리했던 전황을 한 번에 뒤집었다. 월미도에 상륙해 교두보를 확보한 아군은 경인국도를 따라 진격, 13일 만에 서울을 수복하며 한국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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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희 참전유공자회 인천광역시지부장 ⓒ 유승현 포토그래퍼


"나라가 없으면 나도 없다. 그런 생각으로 전장에 뛰어들었어요. 목숨 바쳐 싸울 각오가 돼 있었죠."


강용희(92) 참전유공자회 인천광역시지부장은 그의 나이 스무살에 8240부대에 입대해 무수한 전투를 치렀다. 8240부대는 서해 도서 지역과 황해도 내륙, 동해 등지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던 대북 첩보·유격 부대다.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 나면 부대원의 절반이 사라졌다. 그도 생사의 기로를 수없이 넘나들었다.

"전쟁은 절대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더 부유하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해요. 우리 후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

인천항의 정면에 버티고 서서 한반도를 지켜낸 섬, 월미도. 어스름 새벽, 그린비치 표지석 앞에 서니 가슴이 저릿하고 시리다. 73년 전 땅과 바다를 흔들었던 호국의 함성이 아득하게 들리는 듯하다. 
      
2단계 상륙 지점, 북성포구와 낙섬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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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동 대한제분 앞에 세워진 레드비치 표지석 ⓒ 유승현 포토그래퍼

 
상륙은 2단계 작전이었다. 1단계는 월미도에 상륙해 점령하는 것, 2단계는 인천에 상륙하는 것이었다. 유엔군은 첫 상륙 지점인 월미도를 그린비치라 칭했고, 2단계 작전 대상인 중구 북성동과 미추홀구 용현동 낙섬사거리를 각각 레드비치와 블루비치라 명명했다.

두번째 상륙은 오후 5시 30분부터 이뤄진다. 만조를 기다린 것이다. 레드비치(북성포구)로 상륙한 미 제5연대 1·2대대 해병대는 응봉산과 항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블루비치(낙섬사거리)로 상륙한 제1연대 해병대의 임무는 수봉산을 차지해 적군이 인천으로 들어오거나 인천에서 탈출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9월 16일부터는 인천 시내에서 적군을 소탕해 일사천리로 인천을 탈환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3개의 상륙 지점에는 오석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인천상륙작전 참전회가 지난 1994년 9월에 건립했다.


전쟁의 핏물이 씻긴 70년, 2023년 9월의 인천은 평화롭다. 레드비치는 월미도로 향하는 여행객과 내항 8부두 주변을 오가는 대형 화물 트럭으로 분주하다. 하늘엔 바다 열차가 느릿느릿 슬로모션처럼 날아간다. 공장지대에 둘러싸인 북성포구는 아슬아슬하게도 물길이 막히지 않았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그날을 상기시킨다.

낙섬사거리로 발길을 돌린다. 상륙정들이 갯벌에 앞문을 대고 해병대를 쏟아낸 블루비치는 오늘 매립으로 육지가 돼버렸다. 사거리 고가에 올라 빙둘러봐도 본래 바다였음을 알 길 없지만, 1970년대 초까지 낚시도 하고 수영도 하는 해안가였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 파이고 덧대어 단단해진 땅, 그 한가운데서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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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비치 표지석은 용현동 낙섬사거리에서 아암대로 방향 우측 인도에 자리 잡고 있다. 유엔군이 상륙한 바다 건너 낙섬은 오늘 매립으로 육지가 됐다. ⓒ 유승현 포토그래퍼

 
질곡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

휴전 후 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은 고향과 가까운 인천에 터를 잡았다. 원주민들과 뒤엉켜 이산의 고통과 보릿고개를 견디며 억척스럽게 삶을 일구었다. 주로 만석동과 북성동, 수봉공원과 독쟁이(용현동) 등지에 모여들어 움막을 짓고 '꼬방동네'를 형성했다.

이인철(72) 이북오도민연합회장의 고향은 독쟁이다. 광복 직후 함경도에서 월남한 그의 부모는 핏덩이를 업고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전쟁이 끝나자마자 인천으로 돌아와 정착했다. 전쟁의 피해는 참혹했다. 하지만 생채기가 아물 새도 없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했어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꿀꿀이죽, 제분공장에서 나온 거칠거칠한 사료 원료로 수제비 해 먹고 그것마저도 하루 한 끼밖에 못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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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 이북오도민연합회장 ⓒ 유승현 포토그래퍼

 
바다는 빈손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에게 품을 내주었다.

"부두에서 가대기(하역)를 하거나 인천항 축조 공사에 뛰어들어 간신히 생계를 이었어요.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만석동 석탄 부두 화차에서 떨어진 석탄이나 산에서 땔감을 패다 팔아 연명했어요."

이 회장이 열 살 즈음 집집이 연탄 아궁이를 놓았다. 생활이 안정되자 고향을 그리던 실향민들은 1950년대 말부터 서로 소식을 알고 지내자는 취지로 향우회를 조직했다. 실향민 자녀들을 위한 장학사업, 망배단 설치, 도민을 위한 공원묘지 조성 등을 추진했다.

올해 인천상륙작전 73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실향민들을 위한 화합의 마당 인천 이북도민문화축제를 열었다. 9월 16일 내항 8부두의 상상플랫폼에서, 17일엔 강화평화전망대로 함께 했다. 가슴 뛰는 축제를 통해 인천은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딛고, 평화의 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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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레드비치의 현장, 북성포구 ⓒ 유승현 포토그래퍼

 
인천상륙작전 73주년, 아픔 딛고 미래로
 

인천상륙작전은 한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버린 한국전쟁 초반 전세를 순식간에 뒤집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꾼 노르망디상륙작전(1944년 6월 6일)에 비견될 만큼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시는 올해로 73주년을 맞은 인천상륙작전의 기념행사를 프랑스 노르망디상륙작전 기념행사 못지않은 국제행사로 치른다. 국가적 기념행사로 격상해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9월 한 달 간 평화와 안보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범시민 행사가 이어진다. 시와 해군은 9월 1일부터 19일까지 승전을 재연하고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를 인천 앞바다에서 펼쳤다.

11일 팔미도 등대 탈환·점등 행사를 시작으로 15일에는 해상 전승기념식과 연합상륙작전 재연 행사, 해군 첩보부대 전사자 추모식 등을 열었다. 시는 14일부터 19일까지는 '인천상륙작전 기념 주간'으로 정하고 기억, 추모와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9월 1일부터 30일까지 시는 인천시청 홈페이지에서 인천상륙작전 온라인 사진전을 열어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국민과 함께하는 행사도 이어졌다. 14일 내항 8부두에서 전승 특집 KBS <가요무대>를 촬영했고, 호국보훈 거리 행진, 어린이 그림·휘호 그리기 대회 등을 통해 평화와 화합의 염원을 모았다.

우리 시는 75주년을 맞는 2025년에는 인천상륙작전 참전 8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성대한 국제행사로 추진할 예정이다. 아픔을 딛고 미래로,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와 함께. 이제 인천이 역사를 깨워 바로 세운다.
  
▶ 취재영상 보기 (https://youtu.be/WixfmgA6yDg?si=24HE5qXRIDU1PWv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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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TMI - 인천상륙작전 길 따라 걷기 유튜브 섬네일 ⓒ 굿모닝인천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 포토그래퍼
참고 자료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인천과 한국전쟁 이야기>, <인천 1950>
#인천상륙작전 #태극기 #역사 #역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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