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 안동교구 진안리성지.
김연옥
도로변에 있는 진안리성지는 옛 주막터였던 곳을 2002년 9월에 안동교구에서 매입해 성지로 축성, 지정했다. 최양업 신부는 1861년 6월에 베르뇌 주교에게 성무집행 결과를 보고하러 상경하는 길에 들른 진안리 오리터 주막집에서 크게 병을 얻어 40세의 나이로 선종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모방 신부에 의해 최방제, 김대건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돼 마카오 유학길에 올라 신학 공부를 했다. 1846년 9월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가 피의 순교자이라면, 최양업 신부는 땀의 순교자라 할 수 있다.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골 깊숙이 숨어들어 믿음을 지켜야 했던 험난한 시대에 과로와 장티푸스로 인해 쓰러져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전국에 흩어져 있던 교우촌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목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제 서품 받은 그해 12월에 귀국해 11년 6개월 동안 박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목 활동에 힘썼다. 해마다 7000리가 넘는 거리를 다녔다 하니 한 해에 2749km 넘게 걸은 셈이다. 더욱이 목숨이 위태로운 박해 시대에, 그것도 험한 산길을 걷고 또 걸었을테니 가히 '길 위의 목자', '땀의 증거자'로 불릴 만하다.
그런데, 그의 선종 장소로 충북 진천 배티 교우촌이라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다. 천주교 박해 탓에 드러내 놓고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보면 있을 수 있는 논쟁으로 여겨진다.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복자 박상근 마티아를 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