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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이념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세르비아] 패권의 땅

등록 2023.10.05 08:02수정 2023.10.0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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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에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주로 기차를 이용했던 덕에, 장거리 버스에 타는 것이 꽤 오랜만이었습니다.

버스는 서너 시간을 달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 국경에 닿았습니다. 그간 유럽의 여러 나라를 오갔지만, 지금까지는 모두 쉥겐 협정에 가입해 서로 국경을 개방하고 있는 국가들이었습니다. 입국 심사를 받는 것도 프랑스 이후 처음입니다.


세르비아 입국 심사를 받으며, 국경에 잠시 서 있다가 깨달았습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유럽연합의 깃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르비아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왠지 먼 길을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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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 공화국 광장 ⓒ Widerstand


꼭 유럽연합의 깃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세르비아는 이제까지 거쳐 온 유럽 국가들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습니다. 일단 중앙아시아를 떠난 뒤 한동안 보지 못했던 키릴 문자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의 분위기에도 분명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세르비아부터 발칸반도의 중동부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오랜 기간 받았으니까요. 한때 세르비아 제국을 세웠던 세르비아도 1459년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들어갔습니다.

세르비아가 독립을 되찾은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라이벌,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독립국을 세우는 데 성공했죠. 그리고 이후 세르비아는 발칸반도의 패권국가로 성장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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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메그단 요새 ⓒ Widerstand


물론 패권이란 언제나 전쟁과 정복을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발칸 반도에서는 20세기 초반 두 차례의 '발칸 전쟁'이 벌어졌죠. 세르비아 역시 이 발칸 전쟁의 주역이었습니다. 세르비아 안에서는 발칸 반도의 슬라브인을 모두 통합해야 한다는 '범 슬라브주의'가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표적이 바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습니다.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는 슬라브계 민족들까지 모두 통합하고자 했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는 일부 세르비아계도 살고 있었고,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 등 슬라브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범 슬라브주의'를 주장하던 한 세르비아계 청년이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사라예보 사건'이었습니다. 세계 1차대전의 시작이었죠. 사건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벌어졌지만, 그 본질은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충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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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아래 전시된 무기 ⓒ Widerstand


1차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슬라브인들을 모두 통합하는 데 성공했죠. 그렇게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범 슬라브주의'라는 미명 하에 만들어진 왕국은 그리 원활하게 운영되지는 않았습니다.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구성된 유고슬라비아에서, 다른 슬라브계 민족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었죠. 유고슬라비아는 범 슬라브주의가 아니라 세르비아의 패권주의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차대전이 벌어졌습니다. 슬라브 민족은 분열했죠. 한때는 크로아티아인이 나치 독일을 등에 업고 세르비아인에 대한 인종 청소를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세르비아인 게릴라들도 크로아티아인 학살에 나서기도 했죠.

전쟁은 독일의 패전으로 끝났습니다. 발칸 반도에는 다시 유고슬라비아가 세워졌죠. 이번에는 사회주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 연방이었습니다. 그간 독일 지배에 저항했던 파르티잔 지도자, 티토가 유고슬라비아의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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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바 대성당 ⓒ Widerstand


티토는 강력한 정권 장악력으로 민족주의의 발흥을 억제했습니다. 티토 본인이 세르비아계가 아닌 크로아티아계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티토는 1980년 사망했습니다. 10년 뒤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가 시작됩니다. 유고슬라비아의 붕괴도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세르비아는 패권주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르비아는 독립을 주장하는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등과 전쟁을 벌였죠. 전쟁은 몇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이 세르비아는 주변 민족에 대한 대량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특히 보스니아와의 전쟁에서는 참상이 이어졌죠. 보스니아는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보스니아계가 섞여 살던 땅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돌리고 끝없는 민간인 학살과 전쟁범죄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국제사회까지 이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나토(NATO)군이 투입되어 세르비아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죠. 그제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세르비아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국제형사재판소에 의해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 중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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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으로 파괴된 세르비아 국영방송 건물 ⓒ Widerstand


하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 이후에도 세르비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코소보의 독립 문제였죠.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독립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르비아군은 코소보에 진입했고,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벌였습니다.

결국 이번에도 NATO군이 투업되었죠. 이번에는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 대한 폭격도 진행되었습니다. 1년 여 동안 이어진 전쟁은 결국 1999년 평화 협상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2006년, 세르비아와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몬테네그로가 연합에서 탈퇴를 결정합니다. 어차피 이미 국방과 외교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자치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국민투표에 따라 몬테네그로는 연합을 탈퇴했고, 세르비아는 이제 패권과는 거리가 먼 발칸반도의 내륙국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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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으로 파괴된 옛 세르비아 육군본부 건물 ⓒ Widerstand


하지만 지금까지도 세르비아가 그 팽창과 패권의 꿈을 포기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세르비아의 전쟁범죄 처벌을 담당한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는 2017년에야 임무를 마치고 해산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르비아의 완전한 과거사 청산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세르비아는 여전히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가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한 지금도, 세르비아의 입장은 강경합니다.

전쟁의 참상을 겪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지금도 단일한 국가 체제를 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대통령만 3명입니다.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가 각각 대통령을 선출하죠. 이 가운데 세르비아계는 '스릅스카 공화국'이라는 자치 지역을 만들어, 사실상 별도의 국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베오그라드 시내에는 NATO의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보존해 둔 것이죠. 세르비아의 국영 방송국이나 국방부 건물 등이 폭격으로 무너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의미는 아닙니다. NATO가 자국 영토에 벌인 폭격을 규탄하는 의미에 가깝죠.

여전히 베오그라드 곳곳에는 "나토는 전쟁을 멈추라(STOP NATO WARS)"라는 낙서가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토의 전쟁'은 물론 NATO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의미합니다.

결코 다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세르비아의 민족주의 단체는 러시아와도 매우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코소보 전쟁 당시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사실상 지원해 주었기 때문이죠. 벨라루스를 제외하면, 세르비아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유럽 국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세르비아의 극우 세력에게 전쟁과 팽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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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옛 세르비아 국방부 청사 ⓒ Widerstand


그러니 세르비아에 들어올 때 유럽연합의 깃발이 보이지 않았던 것에도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세르비아는 2009년부터 EU 가입 의사를 타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가입을 승인받지 못했습니다. 주변국과의 갈등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과 코소보 독립 문제 때문입니다.

베오그라드를 떠나는 길, 고속도로 주변에는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영토"라 주장하는 낙서가 여럿 그려져 있었습니다. 세르비아의 패권주의는 지난 100여 년 간 발칸반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는 여전히 그 무너진 이념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너진 꿈에 집착하는 사이, 세르비아는 이제 내륙의 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주변국과의 갈등과,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 사이에서 발전의 동력을 찾기도 어려워지고 말았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역설입니다. 분열되고 축소된 지금의 현실은, 한때 팽창과 패권의 꿈을 꾸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이 역설을 그 시절의 지도자들은 받아들이지 못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허황된 꿈의 유산이란 대개 그런 식입니다.

다만 이 도시를 떠나는 저는 바랄 뿐입니다. 지금의 세르비아에는 과거를 이겨낼 용기가 있기를요. 그 무엇보다 평화가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를요. 여행자인 제가 남길 수 있는 바람은 다만 그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세계일주 #세계여행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발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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