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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광장에 '이것'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

[카프카스 기행, 카스피해 바쿠에서 흑해 바투미까지 (16)] 예레반의 낮과 밤

등록 2023.10.04 09:27수정 2023.10.0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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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광장 주변 도심 살펴보기
 
 공화국 광장 주변 건물
공화국 광장 주변 건물이상기

공화국 광장은 예레반 도심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광장 중심부에 회전교차로 형태의 도로가 있어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도로는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그러면서도 교차로 밖으로 보행자 전용구역이 있어 집회와 행사장으로도 사용된다.

이곳에 광장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20년대 알렉산더 타마니안에 의해서다. 1940년부터 레닌광장으로 불렸고, 1942년 광장 주변으로 정부청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1950년대부터 네오클래식 건물들이 사방을 꽉 채우게 되었다. 이들은 그동안 정부청사로 사용되었다.


1990년 11월 레닌광장에서 공화국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1년 아르메니아 공화국 설립 후 행정부 건물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광장의 동북쪽에 음악분수가 있으며, 야간에 조명을 하고 클래식 음악에 맞춰 분수가 춤을 춘다.

음악분수 뒤로 역사박물관과 국립미술관이 위치한다. 역사박물관은 아르메니아 최대의 국립박물관으로, 고고학, 인류학, 화폐, 현대사 관련 유물을 보유 전시하고 있다. 국립미술관은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아르메니아 미술품 4만 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가치 있는 것이 56개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아르노 바바자니얀
아르노 바바자니얀이상기
 
역사박물관 서쪽으로는 아르노 바바자니얀(Arno Babajanyan) 콘서트홀이 있다. 이곳에는 국립 아르메니아 필하모니아가 상주하며 연주회를 연다. 바바자니얀은 하차투리얀(Aram Khachaturian) 이후 아르메니아 최고의 음악가로 여겨진다.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같은 러시아 작곡가의 영향을 받았고, 하차투리안과 쇼스타코비치의 추천과 찬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공화국 광장의 서남쪽으로는 공원이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공원 쪽으로 가지 않고 사하로프(Andrei Sakharov) 광장 쪽으로 간다. 왜냐하면 밤에 오페라 극장 남쪽으로부터 공화국 광장으로 이어지는 북쪽대로를 따라 야경을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하로프 광장에는 2001년에 세운 사하로프 동상이 있다. 사하로프는 소련의 핵물리학자로 1948년부터 핵무기 개발에 앞장섰다. 그러나 1968년부터 개인의 자유, 인권, 세계평화를 주장하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었다. 1970년에는 소련 인권위원회를 결성하고, 전 세계 인권단체를 향해 호소와 청원문을 발송하고 그들과 연대했다.

이때부터 사하로프는 KGB의 감시와 정부당국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 1972년에는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 회원들과 소련 언론의 회유와 압박을 받았으나, 반대로 반체제작가였던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은 그를 옹호하기도 했다.
 
 사하로프 광장의 사하로프 동상
사하로프 광장의 사하로프 동상이상기

1975년 사하로프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르웨이 노벨상 위원회는 그를 '인류 양심의 대변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소련당국은 그가 상을 받기 위해 소련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부인인 옐레나(Yelena Bonner)가 시상식에 대신 참석해 <평화 발전 그리고 인권>이라는 연설문을 읽었다.


여기서 그는 무기경쟁의 종식, 환경 존중, 국제적인 협력, 인권존중을 강조했다. 그리고 소련의 양심수와 정치범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그들과 노벨상을 함께 하겠다고 표명했다. 사하로프는 1980년 1월 체포되어 고리키(Gorky) 시로 보내졌고, 1986년까지 소련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1986년 12월 사하로프는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의 개혁과 개방 정책 덕분에 모스크바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1988년에는 독립적인 정치조직 결성에 도움을 주었고, 소련의 정치체제에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1988년 12월에는 분쟁지역인 나고르노 카라바흐 진상조사를 위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했다.


그리고 아르메니아인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 인연으로 아르메니아 예레반에 사하로프 광장이 만들어지고 그의 동상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하로프는 1년 후인 1989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아르메니아 알파벳이 가지는 의미
 
 윌리엄 사로얀
윌리엄 사로얀이상기
 
예레반 시내를 돌아보며 만난 동상으로는 사로얀(William Saroyan)이 있다. 그는 아르메니아계 미국 작가로 1940년 드라마 부문 퓰리처상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1943년에는 그가 쓴 <인간희극>(The Human Comedy)이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는 아르메니아계 이민들의 미국생활을 작품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미국 서부 해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사를 기록물을 보는 것처럼 자세히 묘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때문에 일부 평론가는 그를 헤밍웨이, 스타인벡, 포크너 같은 미국 작가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도심을 걸으면서 만난 인상적인 것은 담벼락에 새겨진 아르메니아어 알파벳이다. 글자를 인식할 수는 없고, 아래 오른쪽에 러시아어와 영어로 발음이 적혀 있는 것 같은데,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가이드 슈산도 자세한 설명 없이 지나간다.

자료를 통해 확인하니 아르메니아 문자가 만들어진 것은 405년 마슈토츠(Mesrop Mashtots)에 의해서다. 마슈토츠는 가톨릭, 정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성직자로, 아르메니아가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한 위대한 성인이다. 그는 라틴어는 물론이고 그리스어, 페르시아에 능통했으며, 정치가로 외교문서 작성에도 참여했다.
 
 아르메니아어 알파벳
아르메니아어 알파벳이상기

그는 브람샤푸(Vramshapuh) 왕과 사학(Sahak) 대주교의 지원을 받아 36자의 아르메니아어 알파벳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솔로몬의 <잠언서> 첫 문장을 아르메니아어로 옮겼다.

"이것은 지혜와 가르침을 인식하도록 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을 알게 한다(Ճանաչել զիմաստութիւն եւ զխրատ, իմանալ զբանս հանճարոյ)."

알파벳의 창조는 아르메니아 문학의 시작을 의미하고, 민족의식과 정신을 일깨우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언어를 통해 민족을 통합하는 일이 가능해졌고, 종교적인 일체감을 갖는 일이 가능해졌다.

예레반 중심가 밤길을 걸어 분수쇼를 보러 가다
 
 예레반 북쪽대로 야경
예레반 북쪽대로 야경이상기

저녁식사 후 우리는 예레반 야경투어에 나섰다. 오페라 광장 남쪽에 있는 백조의 호수에서 출발해 북쪽 대로를 따라 공화국 광장까지 내려갈 것이다. 이곳은 상업용 빌딩과 명품샵이 늘어선 예레반의 중심가 보행자 도로다. 호수 옆에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의 아르노 바바자니얀 동상이 있다.

동상 옆에서는 거리의 악사가 실제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북쪽대로에 들어서도 클라리넷, 기타 같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거리의 화가도 보인다. 간디, 주윤발, 이소룡 초상화가 보인다.

지하상가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상가가 한산한 편이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슈샨에게 예레반과 아르메니아의 경제상황을 물어본다.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구 소련체제가 무너지고 독립을 이루었으나 2차산업이 파산하고 유통망이 붕괴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단다.

더구나 아제르바이잔과의 분쟁으로 국방비 부담이 늘어나 경제적으로 최악이라고 한다. 거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사람들이 몰려와 주택 임대료와 물가는 올라가고 있다니 안타깝다.
 
 공화국 광장의 분수쇼: 뒤로 보이는 건물이 역사박물관과 국립미술관이다.
공화국 광장의 분수쇼: 뒤로 보이는 건물이 역사박물관과 국립미술관이다.이상기

거리 양쪽에 있는 수많은 상업용 빌딩도 임대료가 너무 비싸 들어와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살펴보니 3층 이상 불이 켜진 곳이 별로 없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어려움이 많은 나라가 아르메니아다. 그나마 외국에서 성공한 아르메니아 기업인의 지원으로 경제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선지 '꽃을 파는 노인' 동상(1991)이 더 실감 나게 다가온다. 일자리를 잃은 노인이 꽃을 팔아 생계를 영위하기 때문이다. 이 길에는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에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도 많다. 자동차에 온갖 물건을 싣고 다니며 파는 젊은이도 눈에 띈다. 튀지 않으면 관광객의 시선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보면서 여유 있게 한 시간 정도 걸으면 공화국 광장에 도착한다. 공화국 광장 분수대에서는 밤 9시부터 분수쇼가 펼쳐진다. 이것을 보기 위해 예레반 시민들과 관광객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분수쇼는 유럽의 클래식 음악에 맞춰 분수가 춤을 추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프랑스 국제수상쇼(Aquatique Show International) 회사의 제작으로 2007년 9월부터 운영되고 있다. 기계, 전기, 수리공학적 토대 위에 물 분사, 빛 발사, 음악연주가 결합된 멀티미디어 분수다. 음악성, 예술성, 오락성을 갖춘 분수로 유명하다. 이제는 컴퓨터 공학을 활용해 물과 빛 그리고 음악과 춤이 자동으로 결합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레반 #공화국 광장 #사하로프 광장 #야경 #분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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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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