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도는 정원을 하늘 위에서 찍은 사진같은 것이다.
유신준
할배와 아침 일을 하면서 깨달은 건 호흡이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과 호흡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잘 하지 못했던 영역이다. 사는 기술을 배우지 못했다.
외딴집 아이는 누구랑 어울리는 게 태생적으로 서툴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세살버릇 여든간다. 스스로 잘못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린다. 내 일만 열심히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게 아니다. 어울려 일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내 일만 잘해서는 함께 작업한 생울타리 높이가 맞지 않는다. 실패다. 지금에야 그런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고 있는 거다.
이미지 상상은 디자인 공부의 첫걸음
하루종일 방에 틀어박혀 요시다 과외 선생 숙제를 했다. 식재 평면도를 백지에 옮겨 그리는 작업이다. 선생이 작업한 주택의 평면도가 교본이다. 전체 평면도 1장과 부분 평면도 7장으로 구성돼 있다. 평면도에 배치된 수종을 확인하면서 따라 그리는 것이 이번 숙제다.
선생은 평면도를 그리면서 정원수 도감에서 이름을 찾아 그 나무의 특징과 수형을 확인하라 했다. 나무가 서 있는 정원의 모습도 상상해보라 했다. 어떤 나무가 높은지 서로 어떻게 어울리는지.
그녀는 수업 때마다 강조했다. 디자인은 상상이다. 그리면서 평면도가 어떤 풍경을 만들 것인지 상상해 보라. 추상적인 기호로 구성된 평면도를 실제 정원모습으로 떠올려 보라. 정원 설계란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다. 시공은 그 이미지를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일이고.
연필로 틀을 잡고 색연필로 고목, 중목, 저목과 지피식물을 구분해서 색칠을 했다. 다이소 색연필 세트는 녹색계열이 2종류 밖에 없어서 표현에 어려움이 있었다. 적당히 색을 섞어가며 작업을 했다.
평면도는 정원을 하늘 위에서 찍은 사진같은 것이다. 주로 위치를 표시하는데 쓴다. 하얀 종이위에 알록달록 기호로 표시된 설계도면을 보며 완성된 정원을 상상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상상이 잘 안 될 때는 입면도를 그려보라 했다. 입면도는 서서 정원을 바라보는 풍경으로 입체 공간이다. 큰 나무가 중심이 되고 작은 나무들이 어우러지며 부등변 삼각형 풍경이 만들어진다. 이미지 상상은 디자인 공부의 첫걸음이다. 디자이너의 의도를 손에 쥐듯 살필 수 있는 좋은 공부다.
숙제를 하다보면 좋은 점이 많다. 평면도를 따라가며 선생과 교감하는 거다. 궁금한 질문들도 생긴다. 이곳에 왜 이 나무를 정했을까. 어프로치는 왜 직선을 피할까? 사선방향으로 두면 왜 좋아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