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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이 항일투쟁이냐'는 송호근 칼럼에 답한다

역사학계 연구 성과와 반대되는 주장... 을미의병은 서훈했는데 왜 동학은 안 하나

등록 2023.10.12 12:04수정 2023.10.1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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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는 칼럼(동학이 항일투쟁이라고? <중앙일보>, 2023, 10, 3, 27면)을 통해 1894년 동학농민봉기를 항일투쟁으로 보지 않으며, 따라서 1894년 동학농민봉기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대우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을 폈다. ⓒ 중앙일보

 
송호근 교수는 칼럼(동학이 항일투쟁이라고? <중앙일보>, 2023, 10, 3, 27면)을 통해 1894년 동학농민봉기를 항일투쟁으로 보지 않으며, 따라서 1894년 동학농민봉기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대우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을 폈다.

아울러 칼럼에서 송 교수는 동학농민봉기 참여자가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는 의도적 강조는 학계가 그토록 경계한 운동권적 역사 편집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송 교수의 주장은 필자의 눈을 의심하게 하였다. 송 교수의 주장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와 너무도 반대되었기 때문이다. 송 교수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부합되지 아니한 내용이 있어서, 필자는 독립운동사 전공 역사학자로서 이를 논박하고자 한다.

수많은 학술 논문 '2차 동학은 항일투쟁'

첫째, 수많은 학술 논문과 저서에서 이미 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투쟁 즉 독립운동이라고 논증하였다. 1차 동학농민혁명(1894, 3, 20, 무장 봉기)은 신분제 철폐와 같은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이었다. 2차 동학농민혁명(1894, 9, 10, 전주 삼례 봉기)은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1894, 6, 21.)으로 침략자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항일 동학농민혁명군을 섬멸하고자 일본군이 조선 관군의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였다. 전봉준 장군과 최시형 선생이 2차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켜 일본군을 몰아내고자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싸웠다. 계속해서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군은 전라도의 원평과 태인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으나 패배하였다. 장흥 석대들 전투에서 동학농민혁명군은 일본군에 의해 크게 패배한 이후 재기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1980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2023년 현재 9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까지 43년 동안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일본군을 몰아내려고 한 항일 구국 투쟁 즉 독립운동으로 기술하고 있다. 교과서의 서술 사례 하나만 들겠다.


미래엔 출판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2020)는 동학 농민군의 2차 봉기에 대해 소제목을 "항일 구국 투쟁을 펼친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로 기술하고, 본문을 "조선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가졌던 일본은 조선 정부의 철병 요구를 거부하였다. 오히려 무력으로 경복궁을 기습 점령하여 조선 정부를 장악한 후,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 이에 농민군은 반침략의 기치를 들고 다시 봉기하여 항일 구국 투쟁을 전개하였다"(112쪽)로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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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호 외 7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미래엔, 2020. '항일 구국 투쟁을 펼친 동학 농민군의 2차 봉기'(112쪽)라고 제목을 달음. 항일 구국 투쟁은 독립운동을 가리킨다. ⓒ 박용규

 
9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전봉준이 체포되어 심문받은 내용이 기술된 <전봉준 공초>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심문자: 전주 화약 이후 다시 군대를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가?
전봉준 : 일본이 개화를 구실로 군대를 동원하여 왕궁을 공격하니, 충군애국의 마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과 싸워 그 책임을 묻고자 함이다.

역사교사들은 위의 사료를 통해 2차 동학농민군이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기치로 내걸고 일본군과 싸웠음을 확인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시험 문제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한 항일 무장투쟁의 공통점을 가진 것을 고를 때, 2차 동학농민운동과 을미의병을 답으로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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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공초(全琫準供招)(1895) 침략자 경성주재 일본영사 우치다 사다즈치가 재판에 참여하여 전봉준을 심문한 내용을 <전봉준공초>에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법률 재판도 일제에 침탈된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둘째, 1894년 동학농민봉기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대우하는 것이 맞다. 독립유공자 서훈은 항일투쟁, 반일투쟁을 가지고 서훈하였다. 을미의병과 2차 동학농민혁명은 똑같은 항일 독립운동이다. 똑같은 항일 독립운동인데도 양반이 참여한 을미의병(1895) 143명은 1962년부터 2022년까지 국가보훈부가 서훈하고, 농민이 참여한 2차 동학농민혁명(1894) 참여자는 단 한 명도 서훈하지 않고 있다.

항일투쟁인 을미의병 참여자 143명의 서훈이 합당하다면, 을미의병(1895)과 똑같은 2차 동학농민혁명(1894) 참여자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 똑같은 항일 독립운동이기 때문이다. 독립보훈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기관은 형평성과 공정성에서 같은 잣대를 대야 한다. 서훈에서 이중 잣대를 대서는 안 된다. 을미의병(1895) 참여자의 서훈과 마찬가지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도 서훈해야 공정하고 형평에 맞다.

운동권적 역사 편집 아니다

셋째, 2차 동학농민봉기 참여자가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는 의도적 강조는 학계가 경계한 운동권적 역사 편집이 아니다. 한국 역사학계는 2차 동학농민혁명이 '독립운동사의 범주에 포함된다'라고 논증하였다. 1998년에서 2023년 지금까지 대학의 한국독립운동사 개설서인 <한국독립운동사 강의>(한울)에서는 한국의 독립운동이 갑오의병(1894)과 2차 동학농민혁명(1894)에서 시작되었다고 가르쳐왔다. 이처럼 역사학계 전문가의 역사적인 평가가 끝났다. 결코 운동권적 역사 편집이 아니다.

1994년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이후 한국 역사학계의 왕성한 연구 성과에 의거하여, 2004년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약칭 동학농민명예회복법)이 제정되었다. 동학농민명예회복법(2004)의 제2조(정의)에 이미 "1894년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 참여자"라고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1조(목적)에 대한민국 정부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를 회복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9월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법안 소위를 통과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윤준병 의원 대표발의)은 동학농민명예회복법의 내용에 의거하고 있다. 위의 일부개정법률안에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가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 대해"서만 "상훈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훈 또는 표창을 추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 대해서만 서훈을 추천할 수 있다'라고 한정 짓고 있다.

아울러 "개정안은 상훈법에 따라 서훈과 표창을 받은 경우 받은 날로부터 '독립유공자예우법' 제6조에 따라 등록을 신청한 것으로 간주할 뿐 국가보훈부 장관의 요건 확인과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 등을 거쳐야 한다"라고 단서 조항까지 두고 있다. 송 교수는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와 동학농민명예회복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기 바란다.

현재(2023년 3월)까지 서훈을 받은 전체 독립유공자는 1만 7748명이다. 의병(을미의병·을사의병·병오의병·정미의병) 참여자는 2715명 서훈을 받았다. 그 가운데 을미의병 참여자는 143명 서훈을 받았다.

유족이 있는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474명에 불과하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단 한 명도 서훈받지 못하였다. 이제는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도 서훈하여야 한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법률(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2004) 제정과 2019년 2월 국가기념일 제정으로 완결되었다. 순국선열에 대한 서훈에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2차 동학 #전봉준 #항일투쟁 # 2차 동학농민혁명 #을미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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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글학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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