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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저승사자'의 조언 "평화 원하면 전쟁 대비? 진실의 일부일뿐"

클린턴·오바마 대북정책 총괄한 로버트 아인혼 "억지력으론 충분치 않아, 외교 수반돼야"

등록 2023.10.17 16:16수정 2023.10.1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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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 사진은 2016년 4월 27일 아인혼 차관보 방한 당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면담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미국 클린턴·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며 '대북 저승사자'라고 불렸던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국무부 비확산 담당 차관보)이 '억지력 강화'만으로는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기 어렵다며 "지금이 외교를 새롭게 추진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지난 6일 전라남도 신안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관으로 열린 '2023 김대중평화회의' 발표문을 최근 브루킹스연구소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는 이 글에서 "전쟁을 피하거나 평화를 이루려면 억지력에 외교가 수반돼야 한다"며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은 서로를 억지하기 위해 막대한 핵무기를 축적하는 동시에 외교에 임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 하지만 외교에도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몇 년 간 한반도의 안보 환경은 급격히 악화됐다"며 "긴장과 불안정성을 고조시킨 주요 원인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확대 및 다각화하려는 북한의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진단했다. 또 "동맹국(한미일)들은 억지력을 우선시하면서도 외교적 참여를 지향해왔으며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다"며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모든 이니셔티브를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외교가 부재한 현재, 상황은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지금이 외교를 새롭게 추진해야 할 때"라며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다소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봤다. 또 "미국과 동맹국들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계속 고수해야 한다"면서도 "지금은 가장 즉각적인 위협, 즉 핵 수준으로 고조될 수 있는 의도적이거나 우발적인 무력 충돌의 위험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접근하여 당분간 비핵화를 제쳐두고 대신 신뢰 구축, 투명성, 소통 조치 등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의제에 집중"하라며 "협상은 양자, 3자 또는 6자회담 참가국으로 이뤄진 다자간 지역 회담 형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러한 조치로는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비핵화를 향한 진전을 보장하지도 않는다"고 보지만, "한반도의 하향세를 멈추거나 역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합의가 충실히 이행된다면 북한 핵 위협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위한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 이 오래된 조언에는 많은 진실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는 진실의 일부일 뿐"이라며 "억지력이 필요할 수 있지만, 충분치 않다. 외교가 수반돼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하고 매우 중요한 목표를 가진 외교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글을 끝맺었다. 

다음은 로버트 아인혼 선임연구원의 발표문을 김대중평화센터에서 번역해 공개한 전문이다.


[한반도 평화: 변화된 세계, 새로운 평화 패러다임]

이번 김대중평화회의에서는 4세기 로마 장군의 역설적인 조언을 되짚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 

이 로마 시대의 격언은 공격적인 적이 있다면 군사력을 증강하여 적에게 '공격을 가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알려주어 공격을 감행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전쟁에 대비하여 평화를 이룬다는 생각은 수 세기 동안 안보 전략의 중요한 토대가 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억지'라고 부릅니다. 

물론 모든 국가가 평화를 위해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국가는 정말 전쟁을 위해 전쟁에 대비하기도 합니다. 히틀러는 유럽과 그 너머를 정복하기 위해 나치 전쟁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평화를 지향하고, 무장된 적으로부터의 심각한 안보 위협에 직면한 국가들은 대개 이에 상응하는 군사력을 구축하는 전략을 선택해 왔습니다. 적절한 억지력을 구축하고 유지하지 못하면 약하다는 신호를 되고, 침략을 불러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억지력, 또는 힘을 통한 평화라고도 불리는 이 전략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오랜 기간 동안 적용되었습니다. 냉전 시대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의 소련 억지는 동서 간 주요 분쟁을 피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억지 전략에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적을 억제하기 위해 방어를 강화하는 것은 적에게 공격적인 의도의 표시이자 자국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상대는 역량을 더욱 강화하여 이에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상호 적대감이 강화되고, 대치 상태가 영속화되며, 근본적인 갈등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군비 경쟁이 발생해 비용이 많이 들고 불안정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양측이 군사력을 증강함에 따라 상대방이 무력 사용, 심지어 핵무기 선제 사용에 대한 대비로 보일 수 있는 정책을 선언하거나, 무기 시스템을 시험하거나, 훈련이나 배치에 관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우발적 사고, 오해 또는 계산 착오로 인해 무력 충돌이 발생할 위험이 커집니다.

또한 상호 군사력 증강이 대규모 무력 적대행위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낮은 수준의 도발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침략자가 대규모 보복을 억지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겠거니' 하고 낮은 수준의 도발을 감행하는 자신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전쟁을 피하거나 평화를 이루려면 억지력에 외교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은 서로를 억지하기 위해 막대한 핵무기를 축적하는 동시에 경쟁을 완화 및 안정화하고, 핵무력을 제한 및 축소하고, 투명성과 신뢰 구축 조치를 채택하여 위험한 잘못된 계산을 피하고 경쟁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외교에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세요. 하지만 외교에도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려사항은 현대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문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정전협정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에 대한 희망은 계속해서 빛을 잃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한반도의 안보 환경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긴장과 불안정성을 고조시킨 주요 원인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확대 및 다각화하려는 북한의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김정은 정권 하에서 핵무기는 빠르게 확대되었고, 선제적 핵무기 사용 의지를 포함한 서울과 워싱턴을 향한 선동적인 수사가 동반되었습니다. 

김정은이 공격적인 핵 태세를 취하는 동기는 무엇일까요? 본질적으로 외국의 간섭이나 공격으로부터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적 목적일까요? 아니면 한국을 위협하고 강압하여 한반도를 북한의 통제 하에 통일하려는 공격적인 목적일까요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고,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북한이 처음 핵무기를 추구했을 때의 동기는 북한 정권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하려는 외국, 특히 미국의 노력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적 목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초기 동기가 무엇이든, 김정은은 이제 더 공격적인 목표를 추구할 수 있게 되어 더 대담해졌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김정은이 무력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지만, 그는 이제 남북관계를 지배하고 한미동맹에 쐐기를 박으며 점점 더 공격적인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긴장이 고조될 위험을 통제하는 자신의 역량을 위험할 정도로 과신하게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위협이 커짐에 따라 한국과 미국의 경각심도 높아졌습니다. 미국의 안보 보장의 신뢰성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한국의 우려는 극대화되었습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동맹국의 주된 대응은 집단적 억지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는 강력한 동맹으로서의 연대와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왔습니다.

한국은 3개 축 전략을 포함한 독자적인 재래식 전력을 강화해 왔습니다.

한미 양국은 미국의 확대된 핵 억지력의 신뢰성을 강화하고, 억지의 계획과 실행에 있어 한국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를 취해왔습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 국빈방문 시 채택된 워싱턴선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합의한 바와 같이 일본 및 한미동맹은 전례 없는 방식으로 3국 간 국방 협력을 강화해 왔습니다.

동맹국들은 억지력을 우선시하면서도 외교적 참여를 지향해 왔으며,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모든 이니셔티브를 거부했습니다. 

외교가 부재한 현재, 상황은 더욱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위협적인 능력을 계속해서 확대하고 있습니다.

동맹국들은 대규모 실사격 연합 방어훈련과 미국 탄도미사일 잠수함의 입항을 포함한 미국 전략 자산의 고위급 방문을 통해 억지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러한 동맹국들의 노력이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라고 주장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로 인해 자체 핵 프로그램의 가속화와 심지어 선제 핵 원칙이 정당화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이 외교를 새롭게 추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다소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지금까지 대화를 거부한 가장 큰 이유는 주요 핵 및 미사일 역량을 개발하고 시험하려는 야심찬 5개년 계획을 완수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대화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이 모든 협상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은 자신의 정권 존립에 필수적인 요소를 없앨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되돌릴 수도, 협상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한다면 그것은 현 정권의 정책과 가치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거나 정권이 붕괴한 것의 결과일 것입니다.

어떠한 예측도 일축할 수는 없으며, 특히 북한 정권의 궁극적 붕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어느 쪽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당분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북한을 합법적인 핵무장국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불법적이고 기만적으로 핵무기를 획득했습니다. 북한의 핵 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글로벌 비확산 체제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계속 고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즉각적인 위협, 즉 핵 수준으로 고조될 수 있는 의도적이거나 우발적인 무력 충돌의 위험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접근하여 당분간 비핵화를 제쳐두고 대신 신뢰 구축, 투명성, 소통 조치 등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의제에 집중하여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사고, 오인 또는 오산으로 인한 무력 충돌의 위험을 완화할 것을 제안하여야 합니다. 

협상은 양자, 3자 또는 6자회담 참가국으로 이루어진 다자간 지역 회담 형식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참가국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지지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해야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목표 달성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의견이 갈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회담에서 다음과 같은 위험 완화 조치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미사일 시험의 사전 신고
•합의된 특정 기준을 충족하는 육상, 해상, 공중 군사훈련의 사전 신고
•특정 지역(예: 비행 금지 구역 또는 해상 완충 구역)에서의 군사 활동 피하기
•일상적 및 위기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구축
•남북 간 포괄적 군사합의에 포함되었으나, 진행이 지지부진했던 여러 신뢰 구축 조치의 재개
•도발적인 사이버 활동을 방지하기 위한 분쟁 예방 규정의 채택
•선동적 수사(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거나 적 지도부에 대한 참수 공격을 가하겠다는 위협을 포함함)의 완화
•민간 관료 및 군 당국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상대국의 군사 활동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모색하는 '위험 완화 대화'의 마련 

이러한 위험 감소 조치로는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비핵화를 향한 진전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위험 완화 조치로 억지력을 강화하고 연합 군사 대비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과 한국의 노력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선에 따른 위험 완화 조치와 억지력 강화를 위한 동맹의 단호한 노력은 한반도의 하향세를 멈추거나 역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개방형 군비 경쟁을 추구하려는 양측의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한반도에서 가장 심각한 위협인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 핵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위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합의가 충실히 이행된다면 긴장이 완화되고, 건설적인 참여의 습관이 형성되며, 북한 핵 위협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위한 길이 열릴 수 있고, 최소한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 이 오래된 조언에는 많은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억지력은 평화를 달성하거나, 최소한 전쟁을 피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진실의 일부일 뿐입니다. 억지력이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외교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하고 매우 중요한 목표를 가진 외교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로버트 아인혼 #대북정책 #한반도 비핵화 #김대중평화회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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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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