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들과 함께있는 재현이초등학생 재현이
송해진
친정 식구들과 한동네에 살아 저희 집 애들은 어려서부터 사촌들과 함께 자랐는데 그중 맏이였던 재현이가 늘 어린 사촌 동생들을 돌봐줬어요. 동생들도 그런 재현이를 무척 따랐고요. 지네 아빠 닮아 다정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아이였죠.
글쎄요. 다른 집 애들은 딸 아들 할 거 없이 중학교만 들어가도 방문 닫고 안 나온다고 하는데 저희 애는 안 그랬어요. 학교나 집 밖에서 재밌었던 일이 생기면 제 옆에 앉아 싱글싱글 웃으며 얘기하길 좋아했어요. 제가 음식 준비를 하고 있으면 식탁에 앉아 늘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말해 주곤 했죠. 저희 가족은 대화가 많은 편이었어요. 아이와 좋아하는 음악까지 서로 공유할 정도로 말이죠.
초등학교 5학년부터 학원을 안 보내고 제가 아이와 함께 공부했어요. 우리 애 성격에 학원에 종일 앉아 있는 게 힘들 거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죠. 아이도 좋아했어요. 그래서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다른 엄마들보다 더 많은 편이에요.
저희 가족은 캠핑을 자주 갔어요.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꼭 캠핑을 갔죠. 캠핑장에서 음악 들으며 바비큐 먹는 걸 재현이가 좋아했거든요. 이 맘 때 재현이랑 함께 앉아 밤하늘에 별을 같이 봤던 게 생각나네요.
재현이는 뭐든 잘 먹는 아이였어요. 덩치도 크잖아요. 한참 먹을 때라 그랬는지 먹성도 좋았어요. 제가 또 요리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매일 신나게 해 먹였죠. 어떤 음식을 해 줘도 재현이는 맛있게 잘 먹어줬어요. 그리고 항상, 표현을 해 줬죠. '음~ 맛있다' 하면서 말이에요.
김치 냉장고에서 막 꺼낸 첫 김치를 작게 썰어주면 얼마나 좋아하던지. 애 입에 김치를 작게 썰어 넣어주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맛있다고 더 달라는 아이였어요 그러면 저는 신이 나서 얼른 김치를 가져다 맛있다는 아이 입에 자꾸 넣어주곤 했어요. 그뿐인가요. 콩나물 무침, 시금치나물 같은 것도 금방 무쳐서 반찬 통에 담기 전에 재현이 입에 먼저 넣어주면 맛있다고 좋아라 했어요. 저는 그런 재현이를 보는 게 또 좋았고요.
그런데 재현이가 그렇게 되고 나니까 그 후로는 주방에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남편이나 딸한테는 미안하지만 도저히 예전처럼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걸요 뭐. 어디 주방뿐인가요. 마트나 시장도 못 가요. 가면 온통 애 생각이 나서. 아 저걸 해 주면 잘 먹는데, 이맘때는 이걸 먹었는데, 아 이걸 한 번 더 먹일 걸 그랬지. 그런 생각하며 울다 나오기 일쑤죠. 딸아이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지 하는데 아직은 도저히 제 마음이 어떻게 안 돼요. 어딜 가도 아이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요즘은 집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아요.
재현이가 집중력이 좋은 애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애가 또 굉장히 어설프고 칠칠찮았어요.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외에는 관심이 아주 없다고 해야 할까요? 어느 정도였냐면요, 비 오는 날 들고 나간 우산을 도로 가지고 들어 온 게 여태 손에 꼽을 지경이에요. 심지어 학생이 공부하는 책가방도 잃어버리고. 신발주머니는 말해 뭐해요. 수도 없이 잃어버리고 다녔죠. 오죽하면 동생이 집에 오다 학교나 아파트 근처에서 오빠꺼 같다며 재현이 가방을 챙겨 왔겠어요.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꽤 여러 번이요.
그날 이후, 재현이는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됐다

▲할머니와 함께한 재현이 맨왼쪽이 재현이
송해진
매년 봄가을에 저희는 13명의 친정 식구들이 다 함께 서울 외곽으로 나들이를 다녔어요. 식구가 많으니 팀을 짜서 운동회도 하고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엔 실내에서 보드 게임이나 윷놀이 같은 것도 하고요. 유독 재현이는 여럿이 함께 모여 놀고 맛있는 음식 먹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고등학생이 돼서도 다 같이 놀러 가는 날을 기다렸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지난 11월 김장 때 가족 모임에선 어쩐지 자기 방에서 나오질 않더라고요. 처음이었어요. 재현이 그러는 거.
그러니까 사고 이후 43일간 재현이는 완전히 다른 아이가 돼 있었어요. 얼굴이나 몸은 재현이가 맞는데 하는 짓이 예전의 우리 재현이가 아닌 거예요. 사고 이후로는 방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고 그 좋아하던 노래도 안 부르고 밥도 안 먹어서 살도 많이 빠졌고요. 정신과를 꾸준히 다니긴 했는데 그 후로 입을 닫고 말을 안 하니 속을 알 수가 있어야죠. 답답했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애 아빠랑 같이 시간을 갖고 기다려 보자 했어요. 그런데 그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거예요.
재현이 그렇게 되고 장례식장에 앉아 도대체 이 녀석이 왜 그랬을까, 이 철딱서니가 죽음이 뭔 지나 알고 그런 무서운 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 했어요. 정말 덩치만 컸지 속은 아직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생각한 게 '아, 그냥 얘는 뭣도 모르고 죽으면 친구들 만날 수 있어서 그랬나 보다' 생각했어요. 애가 계속 죽은 친구들을 보고 싶어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작가님(필자 산만 언니,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 만나서 얘기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어요. 어린 나이에 사람들이 그렇게 한순간에 쉽게 죽는 걸 보니까. 죽는 게 별게 아니구나 했을 수 있겠네요.

▲중학교 졸업 직후 친구들과 재현이친구들을 좋아했던 재현이
송해진
맞아요. 재현이는 친구를 정말 좋아했어요. 왜 그럴 나이잖아요. 고등학교 1학년이면 한참 친구 좋아할 때죠. 그런데 함께 놀러 간 친구 둘이나 그렇게 되고 보니까 애가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에요.
재현이가 먼저 가자고 한 건 아니에요.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핼러윈 축제에 가자고 말이 나왔고 그래서 따라 간 모양인데, 일이 그렇게 돼 버린 거죠. 그런데 그 일을 도저히 애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봐요.

▲재현이책상재현이가 쓰던 책상
이선민

▲짱구를 좋아했던 재현이책상위에 놓인 짱구들
이선민
여기는 재현이가 쓰던 책상이에요. 재현이는 어려서부터 본인 방에 안 들어가고 거실에서 공부하고 음악 듣고 그랬어요. 수학을 좋아해서 한 번 수학 문제를 풀면 서너 시간도 꼼짝 안 하고 집중해서 풀었어요. 나중에 커서 수학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할 정도였죠. 제가 생각해도 재현이한테 잘 맞을 것 같더라고요. 사촌동생들 돌보는 걸 봐도 그렇고. 자상한 성격도 그렇고.

▲재현이가 그린그림재현이가 그린 강백호
이선민
아빠랑 슬램덩크를 보고 와서는 한참 끄적이더니 이런 걸 그리더라고요. 그림을 곧 잘 그렸어요.

▲재현이와 친구들 재현이 친구가 그려준 재현이와 친구들
이선민
"수면제요? 저는 못 먹어요"
이건 재현이 친구가 그려준 그림인데, 재현이랑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들 모습이래요. 이 중에 셋이 지금은 세상에 없네요. 저건 마포대교예요. 나란히 앉아 한강을 봤던 날을 기록한 거래요.
재현이 키우면서 첫애라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가장 가슴 아파요. 제가 엄마 일에 조금 더 능숙한 사람이었다면 우리 재현이가 좀 덜 고생하며 자랐을 텐데 제가 너무 서툰 사람이어서 아이도 힘들었을까 봐 그게 미안하죠.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재현이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찬란하고 소중하고 그랬는데 그땐 그걸 몰랐어요. 당연한 줄 알았어요.
재현이 그렇게 되고 나서는 잠을 거의 못 자요. 수면제요? 저는 못 먹어요. 왠지 약으로 도망치는 거 같다고 해야 할까. 애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다 갔는데 편하게 못 자는 게 당연하지 생각하면서 그 고통을 오롯이 느껴요. 안 그러고는 도저히...
재현이 그러고 나서는 전에 도대체 어떻게 살았나 생각 나는 게 하나도 없는 거 있죠. 장례 치르고 나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더라고요. 하다못해 휴대전화 조작법도 생각 안 나더라고요. 누가 뭐라고 해도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뭘 읽지도 못하겠어요. 네 맞아요, 그날 제 영혼이 재현이와 함께 묻혀 버린 거 같아요.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장례를 하고 애를 봉안당에 두고 왔는데도 그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도 재현이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요.
평소에도 장난을 자주 하던 아이여서 그런가, 어느 날 문 열고 들어와서 엄마 미안해 장난이 심했지? 할 거 같아요. 정말이지 우리 재현이가 세상에 더는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더는 내 아이를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요. 이 모든 게 그저 긴 꿈만 같아요."

▲재현이스케치북재현이 스케치북 표지
송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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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라는 게시글 하나로 글쓰기 인생을 살고 있는 [산만언니] 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재난재해 생존자에게 애정이 깊습니다. 특히 세월호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반려견 두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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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다른 아이가 된 재현이... 모든 게 긴 꿈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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