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고속철도 수서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상경 뒤 서울 강남 일대 대형 종합병원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 등 이용객들이 병원 셔틀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부부가 신혼이었던 이십 대 무렵에는 둘 다 젊고 건강했기에 지방의 의료 공백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부모로서 우리는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영유아의 면역력은 어른에 비해 상당히 약했기 때문이다.
"여보, 애가 축 늘어졌어. 열도 펄펄 끓고."
환절기의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아이는 자주 병을 앓았다. 감기는 다반사고 기관지염까지 악화되는 일이 잦았다. 드물게는 급체를 하기도 했다. 아이가 아플 때마가 우리 부부는 번갈아 조퇴를 신청하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하지만 시내 중심가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주변에만 소아과가 있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강릉으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는 소아청소년과 병원 접수도 치열해졌다. 다행히 근처에 병원이 한 곳이 있는데, 독감 시즌이나 학기 초면 주말 접수가 거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주중에는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도 많았다. 그래서 가정상비약으로 버티다가 토요일 오전 진료를 이용하고는 했다. 그런데 오전 8시 30분부터 진료를 보는 병원이 8시 50분에만 가도, 이미 그날 오후 1시까지 예약이 마감돼 있기 일쑤였다.
운 좋게 접수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때부터 기다려야 하는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 강릉 시내 권역에 살아도 접수 시간 오전 8시 30분을 맞추기 힘들었으니, 주변 소규모 지자체에서 원정 진료를 보러 온 분들은 훨씬 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충격적이게도 강원도 영동 지역에는 소아응급실이 없다. 나는 그 사실을 학교 업무로 평창 현장체험학습을 준비하다가 처음 알았다. 계획서를 작성하며 안전 관련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혹시라도 야간에 소아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원주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야했다. 거리상으로 원주보다 가까운 강릉에는 소아응급실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동료 교사에게 문의해 보니, 속초나 인제 쪽에서 밤에 소아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춘천 강원대 병원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응급실 뺑뺑이'는 시골 농어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나름 영동 지역의 거점 도시라 불리는 곳에서도 의료 공백은 이미 진행 중인 사안이다. 같은 강원도 내에서도 영서 지역에서는 춘천시, 홍천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이 강원대학교병원과 함께 소아중환자 24시간 의료 제공 협약을 맺었다고 하는데 영동 주민으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올해 속초의료원에서는 응급의학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다섯 차례나 공고를 냈다. 파격적인 억대 연봉에도 지원자가 구해지지 않아, '응급의학과'로 한정되었던 전공 제한을 없애고 연봉을 4억 원 대로 끌어올려서야 겨우 자리를 채웠단다. 4억 연봉은 당장에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렇지만 인근 지역민 입장에서는 의료 공백의 공포를 피부로 느끼게 되는 뉴스였다.
강원도에는 의사 수가 적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강원도민 1000명당 의사 수는 2.65명으로, 같은 기준 서울의 4.7명과 비교하면 절반에 그치는 수준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더 가슴이 답답해지는 소식도 있다. 강원도의 유일한 국립 의대병원인 강원대 병원은 지난 2019년과 2020년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충원하지 못했고, 올해도 마찬가지란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다른 어린이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이기적이게도 우리집 두 아이가 영유아기를 큰 병치레 없이 넘겼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의료 환경이 잘 갖춰진 곳에서 지내시는 분들은 쉽게 공감하기 힘든 감정이지 않을까.
내 건강을 내가 지켜야 하는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