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선생님봉평을 유명관광지로 만들어주신 이효석 선생님
최지현
사실 봉평은 이 두 가지 말고도 매력적인 곳이다. '가볼만한 곳'으로 따진다면 여름이면 물놀이 하기 좋은 흥정계곡이 있고, 조선시대 강릉부사가 그 경치에 반해 정사를 잊고 8일을 노닐었다던 팔석정, 캠핑으로 유명한 태기산, 봉평의 산과 계곡을 끼고 있는 허브나라, 무이예술관 등이 있지만 봉평의 특징적인 매력은 무엇보다 잔잔한 고즈넉함이다.
인구밀도가 낮고 숨어 있는 힙플레이스도 없다. 사람이 자연에 스며드는 동네다. 그런 이유로 봉평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쓸데없는 치장도 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봉평에만 머무르는 게 적적할 때도 있어 하루를 내어 옆 동네인 강릉에 다녀오곤 했다.
봉평의 숨은 매력 오일장
지난 주말, 우리집 어린이와 단 둘이 봉평집에 다녀왔다. 둘이 가는 게 아직은 자신이 없어 어린이에게 재차 물었지만 가고 싶다고 해서 용기를 냈다. 많은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는 게 어린이도, 나도 피곤할 것 같아 이번에는 평창 내에서만 놀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 만한 거리들을 검색하다가 봉평오일장이 끝자리가 2나 7로 끝나는 날에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침 여행의 마지막 날이 22일이었다. 그렇다면 봉평면문화센터 뒤편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오일장을 구경한 다음 서울로 출발하면 아쉽지 않은 여행의 마무리가 될 것 같았다.
봉평장 역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축복을 받은 장소이다. 소설은 파리떼 날리는 봉평장에서 시작하여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가는 밤길에서 끝이 난다. 산허리에 소금 뿌린 듯 피어난 메밀꽃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힌다는 그 달밤의 묘사가 고단한 장돌배기의 삶을 그토록 낭만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았던가.
드팀전 장돌림을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지방도 해매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도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
그 유명한 봉평장을 봉평을 오고 간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구경하게 된 것이다. 하늘 높고 햇살은 따사로운 가을날이었고 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주변에 단풍놀이를 하러 온 관광객들이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잠든 마을같이 조용한 시내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덩달아 신이 났다.
내륙지방답게 밭에서 기른 과일과 채소, 갖가지 곡물과 산에서 캔 나물, 버섯류가 주품목이었다. 지갑에 현금이 딱 천원 남아 있었던 것이 유일한 옥의 티였다. 준비성 없는 스스로를 탓하며 아쉬움을 삼키고 있는데 계좌이체도 가능하다는 것!
구매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치기엔 물건들이 저렴하고 신선했으며 내 앞에서 이것저것 고르며 담아가는 손님들이 연출하는 분위기가 사뭇 유혹적이었다.
요즘 금사과라 불리는 사과를 한 봉지 가득 담아 만 원에 파는데 어찌 안 사고 배기겠는가.
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해야겠다는 알 수 없는 사명감도 거들었다. 그리하여 송이버섯과 사과, 햇땅콩, 말린 고구마가 차례로 손에 들렸고 마지막으로 튤립 구근 하나를 지갑에 있던 천 원을 주고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