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족을 한 아이와 목발을 짚은 적군 대장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고래이야기
복수를 하려던 아이는 적군 대장도 자기처럼 다리 하나가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비슷하게 엄마가 없다는 것도.
그런데 한쪽 다리가 없는 적군 대장은 목발만을 의지해 걷고 있었다. 아이가 의족을 벗자, 적군 대장은 그게 의족이라는 걸 깨닫고 의족을 끼고 걸어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한다. 적군 대장이 묻는다.
"이것 좀 빌려 줄래? 오늘 하룻밤만. 우리 엄마에게 보여 주고 싶어."
"엄마는 돌아가셨다며?" 내가 말했다.
"그래, 그렇지만 엄마는 날 볼 수 있어."
"좋아, 오늘 밤만이야." 나는 말했다.
아이는 그런 적군 대장에게 자신의 의족을 끼워준다. 적군 대장이 사라지고 난 뒤, 아이는 전투 중인 병사들에게 '사격 중지'를 외친다.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복수는커녕 적군 대장에게 자신의 의족까지 빌려주다니. 아이는 엄마를 쳐다볼 면목이 없다. 그런데 그때 사진 속 엄마가 말한다.
"잘했어요, 대장.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전쟁 놀이를 끝낸 아이는 새엄마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눕는다. 그때 사진 속 엄마가 말한다.
"잘 자요, 대장. 푹 자렴."
상상 속에서 엄마의 다정한 인사를 들으며 아이는 잠자리에 든다. 아이가 상상으로 전쟁 놀이를 하는 내용을 담은 이 그림책은, 어린 아이가 겪은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
이 책은 이란 작가들이 쓰고 그린 그림책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벌어진 민간인 피해 사례를 토대로 했다고 한다. 이란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이란 편에만 서지는 않고, '모든 아이들이 피해자'임을 상기시킨다.
전쟁으로 인해 한쪽 발을 잃은 아이. 이 아이가 할 수 있는 놀이는 한정적일 것이다. 밖에 나가 친구들과 축구를 할 수도, 달리기를 하며 뛰어놀 수도 없다. 그 때문에 아이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전쟁놀이에 몰입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에게 발을 잃은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아이는 대장이다. 의족을 한 상태지만 항상 앞장서서 싸우며, 총에 맞은 병사들을 용감하게 구해낸다. 그러나 실제 전쟁에서 아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하실에 숨어 엄마 옆에서 귀를 막고 폭탄 터지는 소리를 듣는 일 말고는. 어쩌면 엄마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그래서 상상 속 전투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건 아닐까, 엄마를 구하고 싶어서.
아이들의 상상 놀이를 주제로 한 그림책에서 주인공은 보통 상상 속 캐릭터와 함께 신나게 논다. 하지만 <잘했어, 꼬마 대장>에서 아이는 적군 대장과 참혹한 전쟁을 벌인다. 실제 전쟁은 끝났지만 아이의 마음속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보다 슬픈 상상 놀이를 다룬 그림책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서 나는 희망을 엿본다. 어른들이 망가뜨린 일상을 사는 아이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적군 대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엄마가 남긴 사랑으로 아이는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해 간다.
상상 속 놀이이기에 적군 대장도 엄마도 결국 아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움직인다는 것에서, 이 모든 것이 아이 내면의 상처를 회복해 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