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행을 향한 저항할 수 없던 힘의 정체는?

[1923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7]

등록 2023.11.01 10:50수정 2023.11.0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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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9월 2~7일,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이 주관한 '일본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 관헌과 민간인들이 재일조선인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말합니다. 학살 당한 대부분이 먹고 살 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넌 일용직 노동자에, 부두 하역 잡부들, 그리고 그 식솔들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씨알(민초)이었을 뿐인데...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납니다. 그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치른 5박 6일간의 추모제 동행기를 쓰고자 합니다.[기자말]
(* 지난 기사, 사냥감의 이름은 '조센징'에서 이어집니다)

저는 요즘 진한 흡인력의 무언가에 의해 이끌려 가는 느낌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큰 에너지가 어딘가로 저를 데려가며 전에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합니다.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하지 않던 말을 하며, 행동이 담대해집니다. 돌아보면 제가 이번에 일본을 가게 된 것도 제 의지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말, 호주에서 두 달을 머물고 돌아온 후 갑자기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간절히, 맹렬히. 한 달 한 달 벌어 먹고사는 제 형편에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해도 해외 여행은 언감생심임에도. 호주에야 아이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가야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른 취미도 없고, 음악도, 그림도 감상에 서툴고 방구석에서 오직 책 읽는 것만 좋아합니다. 그런 제가 애인이라도 둔 듯이 일본에 가고 싶다는 열망에 끄달렸으니...

그 뜬금없는 열기의 정체는 관동대학살로 희생된 6661명 원혼의 부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해탄을 건너와 우리를 만나달라는.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우리를 기록해 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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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의 넋전을 고이 모시고 추모하는 씨알재단 가족들 ⓒ 장영식

 
저는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과 매주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4년째입니다. 김 이사장님의 후반 인생 실천 계획 중 하나로 글쓰기가 있는 거지요. 글쓰기와 독서는 시니어들의 로망이라는 말도 있듯이, 글쓰기는 저와 하고, 독서는 어느 번역가와 영어 원서 읽기로 하시죠.

8월 중순 경 수업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일본을 가야해서 9월 첫 주는 수업을 못 할 것 같은데..."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
"씨알재단 주관으로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를 열게 되었거든. 관동대학살이라고 들어봤나요?"
"물론이지요. 아, 그 행사를 씨알재단에서..."
"100년 만에 첫 제사를 지내는 거지요."


나도 모르게 불쑥,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저도 가면 안 될까요?" 하는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마치 밥 먹다 입에서 밥알이 튀어나오듯.

"아, 그래요?" 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하시는 이사장님. 식사 중 뒤늦게 일행이 나타나자 주방을 향해 "여기 짜장면 한 그릇 추가요~" 하는 분위기로. 발권을 위해 당장 여권(사본)을 보내달라는 사무국장.

그렇게 해서 급작스럽게 일본행이 성사된 것입니다. 돌아보면 그것은 '생명'을 보듬는 일이었습니다. 일본땅에서 무참히 짓밟혔던 100년 전 조상들의 생명을 돌아보라는.

그렇게 추모제에 합류한 후 감상문 정도로 쓰려던 글이 자꾸만 부피가 커지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관동대학살에 관한 이런저런 자료를 제게 가져다 주시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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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학살로 희생된 조선인 원혼들의 넋을 담은 종이인형들 ⓒ 신아연

 
​(*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관동대학살 #관동대지진 #씨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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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생.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저서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강치의 바다』 『사임당의 비밀편지』 『내 안에 개있다』 등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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