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인덱스를 붙인 <커리어 그리고 가정>. 정확히 우리 집에 20년 동안 일어난 일을 연구 결과로 증명해서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생각의힘
저는 서울 서대문구의 독립 서점인 '밤의서점'에서 폭풍의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점 소식지를 통해 소개한 책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 이 글을 씁니다('밤의서점'에는 두 명의 점장이 있는데 그 중 제가 '폭풍의점장'이고, 다른 한 명은 '밤의점장'으로 불립니다).
처음 이 책을 집어든 뒤 저는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다 읽어버렸습니다.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우리 집에서 20년 동안 일어난 일이 이 책에 정확히 나와 있네!"
책의 제목은 <커리어 그리고 가정>입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종신교수인 클라우디아 골딘이 저자인데, 이 분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지요. 하버드 최초의 여성 종신교수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멋진데, 저자가 더 멋진 이유는 또 있습니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이라는 책 제목처럼, 여성들이 가정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노동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진화를 거쳐 왔는가를 연구하기 위해 저자가 1878년~1978년 태어난 여성들을 5개 집단으로 분류해 통시적으로 들여다봤다는 점에 있습니다(이건 미국 사례이지만, 앞서 말한 대로 한국 여성들에게도 그 기제는 똑같이 적용됩니다).
책의 부제는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입니다. 책 띠지에는 잘 보이는 주황색으로 '2023 노벨경제학상 수상'이 쓰여 있네요.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 자리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대체, 왜,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
읽자마자 저도 궁금했습니다.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남성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왜 기업 임원들 얼굴을 떠올려보면 여성이 그렇게 적은걸까요? 학업성취도 면에서도 떨어지지 않는데도요.
보통 우리는 대부분 '남성 위주의 경기장이어서', '여성이 차별 받아서'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건 대한민국에서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2022년 KB국민은행 채용 성차별 사례 등, 실제로 채용 시 성차별이 아직도 공공연히 남아 있는 사회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핵심 원인만은 아니라고 이 연구는 말해 줍니다.
우리나라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많이 해결한 선진 국가에서도 남녀 성별에 따른 임금 차이는 여전합니다. 저자는 그 이유가 '온콜(on-call)'과 '시간'의 문제라고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 연구가 규명하려고 한 문제인 성별 소득 격차의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해, 저자는 연구의 대상을 대졸 유자녀 기혼 여성으로 잡았습니다. 또 백인 여성을 기본값으로 말하고 있습니다(사실 이 부분에 비판이 있기도 한데, 저는 인종이나 나라별 후속 연구는 따로 진행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온콜', 5분 대기조는 왜 항상 여성인 걸까
여기서 '온콜'이란 한마디로, 가정과 자녀 문제에 있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항상 대기 상태에 있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부 중 누군가는 가정의 '온콜' 상태여야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일을 항상 '여성'이 맡게 된다는 말이죠(관련 기사:
30대 부부들의 흔한 일상... 그 전화는 왜 아내가 받아야 할까 https://omn.kr/265c6 ).
둘 다 온콜 상태에 있다는 얘기는 둘 다 '시간적으로 유연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그러면 소위 가성비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돈 버는 데에 더 올인하고 여성은 유연한 직장, 즉, 파트타임 직장이나 야근이나 잔업이 별로 없는 직장에 다니게 된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