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 냉방기를 켠 것처럼 쾌적하게 느껴진다.
유신준
시계 소리만 들리는 거실에서 앉은뱅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두 번째 수업이 시작됐다. 책상 위에는 수업 자료인 에부치씨의 평면도가 펼쳐져 있다. 그녀는 나를 위해 에부치씨에게 부탁해 자료 활용 허락까지 받아냈다. 훌륭한 선생님이다. 항상 감사하며 배우고 있다. 수업은 대개 복습부터 시작한다. 공부는 반복인 거다.
어느 정원이든 디자인의 골격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 눈높이가 기준입니다. 정원을 만들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의뢰인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출발하죠. 그게 디자인의 첫 번째 과정 히어링(Hearing, 고객 요구사항 청취)이에요.
건물과 부지의 관계를 나타낸 도면을 배치도라 합니다. 거기에 의뢰인의 요구사항과 현장에서 본 것들을 면밀하게 기록하는 거죠.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개를 키우고 있는지, 의뢰인이 정원에서 뭘하고 싶은지, 바베큐를 하고 싶다면 어디가 좋은지 관찰하며 히어링 노트를 채워 나가는 거죠.
히어링은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핵심이죠. 모든 게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의뢰인의 희망이 디자이너의 존재 이유라면 디자인의 최종 목표는 고객이 행복할 때까지가 되는 거죠. 현황 조사를 마치면 디자인 절반이 끝나요. 그만큼 중요해요.
다음은 배치도에서 사람들의 동선을 고려합니다. 주차장은 어디에 둘 것인지, 차에서 내려 정문에서 현관까지 이동은 어떻게 되는지, 구체적인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구역을 나눠 놓습니다. 그게 정원의 조닝(Zoning, 땅가름)이죠.
조닝이 끝나면 이번에는 어디를 감추고 어디를 드러낼 것인지 결정해야 돼요. 나무의 역할이 필요한 곳을 결정하는 단계죠. 시선이 신경 쓰이는 곳은 나무로 감춰 줘야죠. 특히 현관과 화장실, 욕실은 반드시 메카쿠시(가림나무)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옆집 이층에서 시선을 차단하고 싶다면 겨울에도 푸른 잎이 달려 있어야 하니까 상록수를 심는 게 좋겠죠. 상록수라면 무슨 나무를 심는 게 좋을까? 여기는 햇볕이 좋은 곳이니까 양수를 심자.
또 한 가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 크기죠. 좁은 공간에 한없이 크는 나무를 심으면 관리가 어렵습니다. 몇 년 후 크기를 고려에 넣는 거죠. 전정을 해도 괜찮은 나무, 강전정을 하면 죽는 나무도 있으니까. 그런 고려를 하다보면 이곳에 어떤 종류의 나무를 심을지 자연스럽게 좁혀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