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의 사랑스럽고 불평등한 코스모스> 표지.
휴머니스트
이렇게 역설해도 흑인은 차별 당한다. 노예로 흑인의 목숨이 무수히 희생당했지만 이는 제노사이드로 불리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흑인은 "상품을 생산하는 대단히 값싼 에너지원이었으며, 강간에서 살인에 이르기까지 백인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폭력적인 환상이라 할 수 있는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인간이 아니었던 조상의 역사는 예를 들기 어려울 만큼 무수했다. 대부분 흑인이었던 홈스버그 교도소에 수감자들에게 행한 화학무기 오렌지 에이전트 실험, J. 매리언 심스 박사가 흑인 여성 노예에게 마취도 하지 않은 채 한 부인과 수술 실험, 흑인 남성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터스키기 실험(1932~1972년 미국 공중보건국이 흑인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 매독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는지를 실험했다) 등, 분노를 솟구치게 하는 과학의 반(反)인권이 넘쳐난다.
흑인을 넘어 시야를 넓히면, 화학자 루이스 피저가 개발한 네이팜탄, 원주민 보호구역의 우라늄 채굴, 핵 낙진으로 고통받는 태평양 제도 사람들 등, 미국은 세계 저개발국 전역에 전체주의적 백인 우월주의로 여전히 사람들을 고통에 밀어 넣고 있다. 그는 묻는다. 이런 과학은 누구를 이롭게 하는가.
과학자 이전에 흑인 여성이라는 자각
흑인 조상을 둔 찬다에게 '노예의 심리 사회적 경험'은 피하고 싶어도 들이닥친다. 한때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을 동료 백인 여성 물리학자들과 동일시하려 했다. 하지만 백인 동료들의 반복되는 인종차별을 겪으며 생각을 바꾼다. 결정적 사건은 2015년 마우나케아 논쟁에서 촉발된다.
미 천문학계가 하와이 마우나케아에 30미터 망원경을 열네 번째 설치하자 원주민 수호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연구만 생각하는 기득권 천문학계는 이들의 주장을 '미개하다'고 치부했지만 찬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마우나케아를 보는 원주민의 문화적 가치에 공감했다. 열네 번째 망원경이 없다고 우주를 관측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찬다는 망원경 설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고, 동료 백인 여성 과학자들의 연대를 촉구했지만, 응답은 받지 못했다.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이 같은 포지션에 있을 수 없는 위치성은 역사적 맥락으로 자명해진다. 사회적 약자인 흑인 여성과 기득권 백인인 여성의 지향이 같을 수 없다. 이는 오랜 갈등이기도 했다. 블랙페미니즘이 교차성을 내걸게 된 배경도 백인 여성이 흑인 여성의 인종성을 간과했기 때문이지 않은가. 여기서 잠깐 찬다의 어머니를 언급하겠다. 찬다의 어머니 마거릿 프레스코드는 블랙페미니즘의 당사자다.
1974년 마거릿 프레스코드는 윌멧 브라운과 함께 '가사노동을 위한 흑인 여성 연대'를 설립한다. 이들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뿐 아니라 노예제도를 낳은 식민주의(흑인 여성의 강제 불임 등)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회 진출권과 남성과 동등한 임금에 전력했던 백인 여성들은 흑인 여성들의 복지권이나 '신체 완전성'의 보호와 확대에 연대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투쟁을 잘 알고 있는 찬다가 마우나케아에서 원주민의 편에 선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연대하지 않은 동료 백인 여성들을 악마화하는 것은 아니다. 백인 여성과학자들이 천문학계(과학계)가 연구를 위해 타 문화를 파괴하고 착취하는 식민지주의의 선봉에 선 것을 부인하거나, 지금도 여전히 그런 위험한 구조에 동조하거나 기여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찬다는 무수한 연구사례를 탈식민주의, 반 인종주의, 반 가부장 등의 관점으로 해체시킨다. 놀라운 성찰을 통해 이른 핵심은 이거다. 과학이 과학을 인질로 잡고 있는 권력의 식탁에서 빠져나오라. 그리고 권력을 중심으로 조직화되지 않은, 경험적 실천으로서의 과학을 하자. 고로 최종 외침은 "우리 모두가 아니면 우리 중 그 누구도"다. 과학자를 참칭하는 가짜 과학자에겐 암호처럼 들릴 구호다.
노파심에 덧붙인다. 책의 1장은 찬다가 입자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면모를 각인시키기 위해 힘을 준 파트다. 혹시 이 부분에서 '난 역시 물리는 안 돼' 하며 책을 놓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인내심으로 싸우지 말고 그냥 2장으로 넘어가시라. 2장부터는 지적 무능 해제다. 무엇보다, 찬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부터가 시작이다.
나의 사랑스럽고 불평등한 코스모스 - 흑인 에이젠더 여성 물리학자의 과학은 늘 차별과 중첩된다
찬다 프레스코드와인스타인 (지은이), 고유경 (옮긴이),
휴머니스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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