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우리 협곡에서 만나는 특별한 자연과 역사

[카프카스 기행, 카스피해 바쿠에서 흑해 바투미까지 (24)] 아나누리와 구다우리

등록 2023.11.10 09:10수정 2023.11.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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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그비강을 따라 아나누리 성채로
 
 아라그비강(오른쪽)이 꽈리강(가운데)에 합류하는 삼각지: 아라그비강의 파란 물색이 보인다.
아라그비강(오른쪽)이 꽈리강(가운데)에 합류하는 삼각지: 아라그비강의 파란 물색이 보인다.이상기

트빌리시를 떠난 버스는 아라그비강이 꽈리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이른다. 그곳에 므츠헤타(Mtskheta)가 있다. 이곳에서 보면 꽈리강과 아라그비강의 물 색깔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카프카스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아라그비강의 색깔이 훨씬 더 맑고 깨끗하다.

우리는 이제 아라그비강을 따라 올라간다. 중간에 코카콜라 조지아 공장이 있는 체로바니(Tserovani)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E60 고속도로로 고리(Gori) 방향으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E117 도로로 아라그비강을 따라 올라간다. 군사도로인 E117 도로는 강 왼쪽으로 이어진다.

강 주변에는 야영장과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이 있어 관광객이 묵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중간에 카누와 카약을 할 수 있는 시설도 보인다. 그렇지만 시설은 열악한 편이어서 관광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진발리(Zhinvali)에 이르자 거대한 댐이 나타나고 호수에 파란 물이 가득하다.

물 색깔이 에메랄드빛인 걸 보니 석회석이 섞인 모양이다. 건기인 겨울에는 수위가 낮아지는데, 우리가 간 여름은 우기를 지나선지 수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곳 휴게소에는 레스토랑과 기념품점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기 때문이다.
 
 진발리 호수
진발리 호수이상기

진발리 호수를 잘 볼 수 있는 지점 곳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사진을 멋지게 찍을 수 있도록 의자와 그네 등을 설치해 놓았다. 이곳은 트빌리시보다는 추운 지역으로 양모로 만든 기념품을 볼 수 있었다. 모자와 양말, 옷 등 양모 제품들이 많고 가격도 비싸지 않다. 나는 이곳에서 양모로 된 양말을 두 켤레 구입했다.

양모로 된 제품은 땀이 나도 그것을 흡수하지 않고 증발시키는 기능이 있어 겨울용으로 아주 좋기 때문이다. 호수 이쪽으로 E117 도로가 나 있다면, 호수 저쪽으로는 호수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이 나 있다. 우리는 휴게소에 잠시 쉰 다음 아나누리 성채를 찾아간다. 성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성 내부로 들어간다.
 
아나누리 성모성당 들여다보기
 
 아나누리 성채의 성모성당
아나누리 성채의 성모성당이상기

아나누리 성채는 상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성벽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상부 성채로 들어갈 수 있다. 성채 안으로 들어가면 두 개의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크기가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이 17세기 전반에 세워진 성모성당이다. 내부가 파괴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 성당의 벽은 돌과 흙으로 만들어져 더 오래된 느낌이 난다. 벽 주변으로 풀과 나무가 자라 관리가 잘 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건물 내부에는 이곳 영주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성당의 붉은 지붕과 비잔틴 양식의 돔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래쪽에 좀 더 크고 잘 보존된 건물이 성모성당이다. 이 성당은 1689년 이곳 영주 바르드짐 공작(Duke Bardzim)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내외부에 조각과 그림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훼손되지 않고 잘 남아 있다. 성당 입구 위쪽으로 포도나무 장식이 있는 십자가 조각이 있다.

이것은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한 성녀 니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십자가 양쪽으로 천국을 상징하는 듯한 동식물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사자와 용, 천사와 악마 같은 동물과 인물을 조각해 넣었다.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느낌이다.
 
 성모성당 입구 십자가와 조각
성모성당 입구 십자가와 조각이상기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벽화와 그림을 볼 수 있다. 정면의 이코노스타시스에는 예수와 성모 그리고 사도상이 그려져 있다. 일부 벽화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콘 형태로 그려진 예수상도 있다. 색이 바랜 사도와 성인 그림도 있다.

유화 형태의 벽화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템페라 기법으로 제작한 벽화는 색이 많이 바랜 것 같다. 이들 그림과 인물이 다 의미를 지니고 있겠지만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게 안타깝다. 돔을 올려다보니 16개의 작은 창이 나 있다. 이것은 동서남북 사방을 각각 네 개씩으로 나눈 것 같다.

아나누리 성채는 13세기 이래 아라그비 지역 영주의 거점이었다. 이 성채는 1739년 이웃 크사니(Ksani) 영주의 침범으로 불타고 파괴되기 전까지는 잘 보전될 수 있었다. 그것은 성채 내부에 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채가 포위되었을 때 이 통로를 통해 물과 식량을 공급할 수 있었고,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적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을 공격하던 적이 누리(Nuri) 출신의 아나(Ana)라는 여인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그들은 그녀를 고문해 그 비밀통로를 알아내려 했으나 죽음으로 항거하며 통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를 기리기 위해 영주가 성의 이름을 아나누리로 불렀다고 한다.
 
 성당 내부 벽화
성당 내부 벽화이상기

그러나 그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스토리텔링이다. 성의 함락과 함께 하부 성채는 크게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나누리 성채는 카헤티 왕국의 소유가 되었고, 19세기 초까지 성주가 여러 번 바뀌게 되었다. 20세기 소련의 지배와 함께 성채와 성당의 활용도가 떨어지면서 문화유산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진발리 호수의 형성과 함께 아나누리 성채는 신자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관광지로 변하게 되었다. 카즈베기로 여행하는 관광객과 구다우리 스키장을 찾는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관광명소가 되었다. 아나누리 성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들어있다.
 
구다우리 전망대에서 만난 조․소 우호기념물
 
 구다우리 협곡에 세워진 조소 우호기념탑
구다우리 협곡에 세워진 조소 우호기념탑이상기
 
구다우리(Gudauri)는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작은 마을이다. 아나누리에서 북쪽으로 50㎞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해발 2,200m 즈와리 고개 남쪽 사면(斜面)에 자리 잡고 있어 스키 리조트로 유명하다. 구다우리는 스키를 위해 태어난 곳(Born to ski)이라고 홍보할 정도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리조트가 암버(Amber) 그룹에서 운영하는 구다우리 롯지(Lodge)다. 이곳에서는 관광, 숙박, 스키 모두를 할 수 있다. 스키철은 아니어서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전망과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또 스키와 관련된 자료와 용품이 진열되어 있어서 둘러보거나 구입할 수 있다.

구다우리 롯지에서 다시 북쪽으로 10㎞쯤 가면 조지아와 소련의 우호를 기념하는 벽화형 기념물이 나온다. 1783년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에 체결된 우호조약 200주년을 기념해 1983년에 세워졌다. 1783년 조약은 말이 우호조약이지, 조지아가 외교적 자주권을 러시아 제국에 양도하는 불평등조약이었다.

이때부터 조지아는 정치 사회적으로 러시아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조․소 우호기념물에 대한 조지아 사람들의 감정이 좋은 편은 아니다. 조형물은 커다란 원통형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쪽에 타일을 장식하고 모자이크화를 그려 넣었다.
 
 조소 우호기념탑의 타일벽화
조소 우호기념탑의 타일벽화이상기

그림은 조지아의 역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만 러시아가 어머니로서 자식인 조지아를 보호하는 듯한 장면이 있어 조지아인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성 조지가 용을 퇴치하는 장면도 보인다. 조지아 시민들이 포도주를 마시며 신나게 춤추는 장면도 있다.

조지아 젊은이들이 총을 들고 나가는 장면도 있다. 전쟁에서 자식을 지키는 어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평화를 추구하는 비둘기 모습도 보인다. 조지아 역사에서 위대한 일을 한 왕들의 모습도 보인다. 산업사회를 이끌어 가는 노동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사람들은 이곳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구다우리 협곡의 경치를 구경한다. 아라그비강이 흘러가는 구다우리 협곡은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그것은 길이 험하고 굴곡이 심해 교통사고가 자주 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근 중국 업체들이 들어와 위험한 도로의 확장과 터널 굴착 공사를 하고 있다. 앞으로 4~5년 후면 터널로 즈와리 고개를 통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협곡의 경치를 보려는 사람들이나 스키를 타려는 사람들은 구다우리 협곡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라그비강 #진발리호수 #아나누리성채 #구다우리협곡 #조소우호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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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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