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공부하던 책상에 앉아서 샐러드를 먹으며 점심을 떼운다.
최혜선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한식을 챙겨먹지 않던 남편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밥과 반찬으로 이뤄진 한식을 간절히 먹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피곤해서 쉬고 싶은 주말에 3시간쯤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프라하에 오직 한식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서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할 정도였다.
영상통화를 할 때 남편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식이 이렇게 먹고 싶을 줄 몰랐다'고. 대중교통으로 가면 물건을 많이 사올 수가 없으니 차를 렌트해 프라하 한인 마트에서 라면 한 박스, 만두, 떡볶이, 물만 부으면 되는 미역국 같은 걸 잔뜩 사오겠노라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한식을 향한 그의 간절한 마음과 한식을 먹지 못해 뭔가 욕구불만에 사로잡힌 듯한 고군분투를 듣다보면 앱으로 토독토독 주문하면 뚝딱 대문 앞에 배달되는, 한국에서는 공기와도 같이 당연한 인프라를 어떻게든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아이가 집에 와서 밥을 달라고 하면 15분이면 맞춤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요즘 떨어지지 않게 채워두는 냉동 꿔바로우를 한쪽에서 바삭하게 익히면서 다른 화구에서는 두부 반 모 툭툭 썰어넣어 차돌박이 된장소스 한 봉지 넣고 냉장고 속 야채와 함께 익히면 되니 말이다. '맛있는 취사가 완성되었습니다'라는 비문을 당당히 뱉어내는 밥솥의 갓 된 밥은 거들 뿐.
요즘 남편과 하는 통화 내용은 학기가 끝나고 12월에 한국에 들어오면 어떤 것들을 사갈까 궁리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체코에 돌아가서 다시 몇 달을 무난히 한식에 대한 결핍을 잠재워가며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말이다. 장기간 저장 가능하고 여기저기에 활용하기 좋아서 밥 먹을 때 간단히 한식 느낌을 줄 수 있는 동시에 수하물로도 보낼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 한다!
욕심 같아서는 최근 미국 마트에 진출해서 대박을 쳤다는 김밥처럼 한식의 인기가 더 널리 퍼져 체코의 일반 마트에서도 한국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외국에 교수가 돼 나가 영어로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연구논문을 잘 쓸 수 있을까를 주로 고민했는데 막상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외로움과 밥이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고민을 같이 해결해 보려다 생활의 근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른들이나 선배들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했던 건 괜한 표현이 아님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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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펑펑' 쓸 수 있다고? 남편이 경험한 체코의 반전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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