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KBS 사장이 취임 첫 날 방송을 중단시킨 <주진우 라이브> 소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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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도 답변도 모두 틀렸다
박민이 공영방송 사장의 책무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청문회에서 다음 다섯 가지를 지적했어야 했다.
첫째, 국회의원이 공영방송의 특정 프로그램을 찍어서 허위, 왜곡, 가짜, 조작이라고 규정하려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정부와 여당에 부정적인 논조의 코멘트가 많았으니 편향됐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
둘째, 공영방송 사장 후보자에게 특정 방송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애초에 공영방송 사장이 공개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도 적절치 않다.
셋째, 사장은 방송의 성향과 논조를 지시하거나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고 임의로 결정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 오히려 다양한 견해를 수용하고 비판과 토론에 열려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공영방송 사장의 중요한 역할이다.
넷째, 설령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을 폐지하더라도 그것은 방송사의 판단에 따른 것이어야 하고 여당 국회의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사장을 바꿔서 프로그램을 바꿀 수 있다는 발상부터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다섯째, 공영방송 사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인 압력에서 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국회의원 개인의 평가에 방송의 논조가 휘둘리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이 사장이 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이런 정도의 상식적인 답변을 할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 자리에 오기도 어려웠을 거라는 데 있다. 박민은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없애라는 사명을 띠고 내려왔고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진우 라이브'가 공영방송에 적합한 프로그램이었느냐를 두고 의견이 다를 수는 있다. 다만 그 판단을 집권 여당이 하고 사장을 갈아치우는 것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렇게 바뀐 프로그램이 정치적 편향성에서 자유로울 리 만무하다.
대통령이 사장 후보자를 지명하고 여야 6대 3의 이사회가 임명 제청을 하는 시스템에서 인사청문회는 충성 서약을 하는 자리가 되고, 공영방송은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한다. 지금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역사적 퇴행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정치 후견주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