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전체가 수해복구 작업으로 분주하다
유신준
그곳 농장에서 '윤보'라 부르는 소형 포크레인을 빌렸다. 애들 장난감처럼 작고 아담한 장비다. 옛날같으면 전부 삽질로 처리해야 할 일들인데 기계를 이용한다. 인간은 기계없이 살지 못할 지경까지 와 버렸다. 삽질 세대는 이 상황이 생소하다.
수국정원에 도착해 보니 엉망이다. 정원 바닥이 큰 물에 떠내려 온 모래천지다. 지난번 정원 손질때 함께 갔던 동네 친구분도 일손을 도우러 왔다. 셋이서 일단 건너편 밭에서 밀려 온 비닐 쓰레기부터 치웠다.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씨름했다.
우리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수해복구 작업으로 분주하다. 행정기관과 호흡을 맞춰 일사분란하게 대응한다. 집안 쓰레기와 토사를 길가에 내놓으면 시에서 치우고 도로 물청소까지 끝내는 식이다. 재해를 당했는데도 서로 웃으면서 농담까지 주고 받으며 일한다. 지진이 많은 땅이라서 자연재해에 단련된 사람들의 저력일까. 어려울수록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윗 동네는 산사태가 발생해서 사람이 상하기도 했다. 개울가 집들은 토사가 덮친 집이 한두 집이 아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다들 집 안의 다른 곳보다 정원을 먼저 손본다는 것이다. 그 집 안의 상징같은 장소라서 일까. 정원복구가 우선 순위다.
오전 새참 쯤에 소나무 농장 사부 친구도 와서 합류했다. 사부가 장비 다루는 일이 서툴어 가르쳐 주러 온 거다. 그는 능숙했다. 마치 기계가 자기 몸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정원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며 요모조모 잘도 해치운다. 장비 몫을 한다. 작은 장비가 큰 일꾼이다.
나는 윤보가 실어주는 모래를 외발 손수레로 옮기는 작업을 맡았다. 초짜에다 젊은 몸이니 힘 쓰는 역할이 당연하다. 한낮에는 더워서 힘들었지만 이 정도는 견딜 만하다. 삼복더위 동안 치열한 정원 작업으로 단련된 무적의 초짜정원사 아닌가.
게다가 나는 머리를 굴리는 일보다 몸을 쓰는 걸 더 좋아한다. 땀 흘린 후 개운한 느낌도 즐긴다. 이런 인간이 어떻게 30년 동안이나 사무실에서 종이와 씨름하며 견뎠을까. 그때는 그런거 모르고 살았다. 먹고 사는 일이니 당연한 일상이었다.
시키는 대로 안 한다며 쫓아온 사부